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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레다 Jul 29. 2020

말로 쌓은 성

2020년 7월 29일


자신의 괴로움을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털어놓기가 가능할까.

아니, '자연스럽게'의 경지에 이르지 않더라도 말이다.

혼자 괴로움을 끌어안고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고서

친구에게, 가족에게 손 내미는 일 - 무척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다.

든든한 존재로 여겨지고 싶은 마음이 큰 상대일수록

나의 여리고 못난, 스스로도 감추고만 싶은 모습을 드러내는 건

날 것 그대로 상처 받을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분명 견디기 힘들었던 괴로움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이야기의 흐름은 잘잘못을 판단하는 장으로 이어지곤 했다.

괴로움의 주체는 사라지고 상대의 억울함이 자리를 차지한다.

힘듦을 드러내는 일에도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데,

예의를 생각할 만큼 괴로운 걸 견디기 어려운 힘듦이라고 할 수 있을까.


괴로움을 안고 좌초하는 상황에서의 예의란 무엇인가.

또, 무례함이란 어떤 기준으로부터 결정되는가.

나는 모르겠다.

가장 가까운 이로부터 위안을 얻기가

왜 이리 어려워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괴로움의 노출에는 아래와 같은 규칙이 있는 것 같다.


1. 아무리 괴로워도 상대의 기분을 배려할 자세를 갖췄는가.

2. 괴로움을 드러내는 기간을 과도하게 넘지 않았는가.

3. 괴로운 마음을 전달할 때 말투를 정갈하게 다듬었는가.

4. 짜증이나 화를 최대한 억누른 채 담백한 어투로 표현했는가.

5. 가족이나 연인일수록 더욱 세심하게 예를 갖췄는가.

6. 괴로움을 토로하다가 상대가 서운함을 말하면 자신의 괴로움은 잊고 상대의 말을 경청했는가.

7. 6번의 행동 후, 상대방에게 한 과거의 실수를 진심으로 사과했는가.

8. 감정과 생각을 분리해서 태도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는가.

9. 괴로움을 수용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버리고 임했는가.



말만 하는 고백은 거짓말, 혹은 판타지에 가깝다.

행동하지 않은 채 말로 채워진 마음은 자기만족과 동일어이다.

말로 만든-존재하지 않는-자기를 진짜 자기라고 믿는 사람은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까지 표현하는데 왜 못 믿지?

난 할 만큼 했어, 더 이상은 못 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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