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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레다 Sep 02. 2020

눈물과 맥주의 총량

2020년 9월 2일


작년과 올해의 여름은 일부러 좋은 날을 찾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쾌한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유를 찾을 틈이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부정적인 인간이 되어 도살장 끌려가는 마음으로 살거나

뜬금없이 솟구친 과거지사를 다독이며 불면한 날이 부지기수였다.

내 안에 사라지지 않는 태풍들이 여럿 나타났는데 어찌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발생이었다.

경로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서 곤란했지.

스스로를 방관한 잘못을 탓하면서도, 그런 나를 안쓰럽게 봐주는 사람이 있길 바라는 -

제멋대로여서 재수 없는 - 소망을 가진 채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배가 나왔다.

2킬로그램이 늘었다.

3개월 다닌 헬스로 생긴 근육량은 아닌 것 같고,

3개월 정도 주 3~4회씩 마신 맥주로 채운 뱃살 같다.

흐물흐물 출렁출렁 웃긴 꼴로 붙어있는 배를 보니 자신을 못살게 구는 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폐해지는 지름길임을 다시, 깨닫는다.

늘 이렇게 '다시', '새삼스레', '또'라는 말을 붙이며 깨닫는다.

지구 자전처럼 돌고 도는 깨달음을 과연, 진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꺄르르깔깔하며 즐겁게 마신 맥주보다

가슴을 치고 울며 마신 맥주가 훨씬 많았다.

함께 마시기보다 혼자,

잠들기 싫어서 이기보다 잠들고 싶어서 마실 때가.

3개월쯤 되었을 땐 습관인가 싶다가도 눈물이 이유일 때가 잦았다.

울 것 같아서, 울고 싶어서, 울고 있어서, 울기 싫어서.

별별 서술을 갖다 붙였지만 결국 '눈물'이라는 교점이 있었다.

이제 그만 마셔야지.

그런 이유로는.

맛있는 맥주에게 몹시 미안한 일이잖아.



하던 일은 딴짓하느라 마감에 바짝 다가섰음에도 지지부진하고

하고 싶던 일은 어떤 기준으로 미달인지 다시 거절당했다.

이유라도 알려주면 보완이라도 하겠는데 아무 말이 없다.

이런 날엔 희한하게 틈만 나면 배가 고프다.

밥과 간식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밥인지 간식인지 모를 양을 애매한 시간에 먹곤 한다.

그런데도 입맛을 다시며 괜히 짧은 한숨 픽픽 뱉는다.

아, 되는 게 없어, 되는 게 없어.

그러면서 뭐라도 해야 해, 뭐라도 돼야 된다고.

하며 스스로에게 이랬다 저랬다 줏대 없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나를 어떻게 믿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지만 어쩔 수 없다.

멱살 잡고 어야둥둥하며 데리고 가야지.

그러다 보면 하던 일이 잘 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실현될지 누가 알겠나.

아니면 둘 다 동시에 될지도 모르고.

이런 게 희망인가 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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