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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레다 Sep 24. 2020

'내 인생이니까'라는 외로운 말

2020년 9월 24일


자리에 앉으며 컵을 놓다가 커피를 조금 흘렸다.

선 채로 손을 타고 흘러 컵받침을 적신 커피를 물끄러미 봤다.

그러다 순간, 타는 듯 뜨거운 덩어리가 식도 끝에서 솟구쳐 오르는 것처럼 눈물이 터졌다.

어금니를 깨물고 소리 내지 않으며 울기 위해 애를 썼다.

아무도 없었고 누구도 보지 않음에도 그랬다.

소리를 내면 더 크고 뜨거운 덩어리를 토해낼 것 같았다.

그렇게만 된다면 후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토해낸 눈물들은 누가 닦아줄 것인가.

자신이 없었다.

빙하의 바닥처럼 거대해 뱉어내려면 식도를 찢어버릴 것만 같은 마음을 감당할 자신이.


오늘처럼 사소한 사건이 눌러놓은 마음의 모서리를 건드리는 날이면

그저 따뜻하게 안아줄 사람을 찾게 된다.

같이 울어 줄, 굽은 등을 쓸어 줄 사람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진정되지 않을 때엔,

유기된 강아지처럼 사라진 사람을 찾아 정처 없이 내달린다.

애당초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사라졌다 생각한 주인을 찾고 보니 그림이었다.

사람이길 바랐지만, 그것도 곁에 있는 사람들이길 바랐지만

말없이 안아주는 존재는 그림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슬퍼하지 않는다.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림도 사람도 더 나은 상황을 꿈꾸며 기대하고 좌절하기를 반복하는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볕이 있는 곳으로 이끌어주려고 애를 쓴다.


그렇다.

애를 쓴다.

그렇게 힘을 쏟아 노력한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라는 말에 언제, 어디서든 눈물을 흘린다.

우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외로움이 존재한다는 걸 자각하고 있음을 느낀다.

"외로운 적 없었어. 그게 어떤 건지 오히려 궁금할 때가 많았지."

라고 말하던 시간이 오래였다.

그런 내게 '외로움'이 눈물 버튼이 되었다니 무언가 달라진 것이다.


대체 언제부터 자발적 외로움에 갇혀 산 걸까.

얼기설기 쌓아 올린 담 안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밖을 동경하며 지낸 걸까.

시작이 언제였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

걸음마하는 때처럼 담 밖으로 어색하게 걸음을 떼고 있는 요즘,

돌아보니 스스로 짓고 허물기를 반복한 세상 안에서 살았었다.

그 광경을 보며 나의 삶은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든 과정이자 결과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그리고 이내 쓸쓸함이 덮쳐와 우두커니 섰다.

쓸쓸함은 외로움이 되고 다시 무력감이 되어 걸음을 멈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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