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면 어쩔 수 없이 집착하는 것이 있다. 각 나이대에 해야 하는 일들.
나는 대학교 졸업, 취업 그리고 결혼까지 20대에 해야할 미션들을 클리어 했다. 직장에서는 대리로 승진까지 했으니, 대한민국에서 성인으로서 독립할 자격이 충분하다. 덕분에 나는 평범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갈 자격도 얻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사람들은 2세는 미국에서 낳으라,라는 또 다른 퀘스트를 주었다.
아 이것이 내 상황에 대한 배경이다. 이제 나는 미국에 있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 들을 수 있는 조언(혹은 잔소리)과 거리가 생겼다.
단, 한국인들은 몸이 한국 밖에 있어도 100% 한국인의 정신으로 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경우 일을 잠시 쉼과 동시에 할 일이 없어지니,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남편은 미국에서 연구를 하고, 연구실에 가고, 교수님과 미팅을 하고, 수업을 듣고 ・・・ 시간만이 부족한 상황의 박사생인 반면 나는 시간이 충분한 그의 아내. 이렇게 쉬는게 맞는지, 아니면 지금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머릿속에 여러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당장 아기를 낳으면 나는 완전히 사라질 것 같아 아이는 바로 포기했다. 집안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깨어있는 시간 내내 20평이 채 안되는 집을 가꿀 필요는 없다.
쉼 없이 달려온 한국인답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불편했고 불안했다. 그냥 housewife는 싫었다. 한국에서도 1인분을 하던 나인데, 앞으로 누군가의 피부양자로만 남기는 싫었다. 그래서 미국 학위를 따기로 결심했다. 미국 학위를 위해서는 토플 시험이 가장 메인이기 때문에 3개월 간 토플 시험 준비를 했다. 평일 주말 상관 없이 하루에 8시간 공부를 했고, 3개월 공부를 하니 원하는 점수가 나왔다. 그 어느 때 보다 마음 졸이면서 시험을 준비했다. 아마 수능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았다.
원하는 점수가 나오니 내가 드디어 1인분을 할 수 있겠구나, 자존감이 채워졌다. 근데 생각해보니 여기서 또 자존심이 상한다. 점수 하나가 내 하루의 기쁨을 좌우한다는게.. 이게 또 한국인인건가? 내가 살아가는 방식, 기쁨과 좌절의 기준이 정부 성과에 맞춰져 있다는게 갑자기 낯설었다. 한국인의 스텝에 맞춰서 살아가는게 이제는 버겁게 느껴진다. 마음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얻어온 상념들이 채워져 있어서 다른 길로 들어서는게 어려울 수 있다. 나는 또 이제 미국에서 입학을 위해, 취업을 위해, 또 다음 스텝을 바라보아야 하는걸까?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준비했던 시험이, 내가 어떤 지향점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내가 당장, 나는 다른 것 보다 이걸 하고 싶어요 !!! 라고 소리칠 만한 것도 없다. 진짜 평범한 한국인 답게 취향도 취미도 부재했다. 한국인의 퀘스트 말고, 다른 것을 좀 찾아보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공부이고, 일하는 것이라면 그것도 상관 없다. 모든 과정에서 성공해야한다는 강박을 갖고 살진 말아야 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