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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lmo Apr 08. 2024

레이첼 카슨과 가브리엘 타르드


1983년 유시민은 군대를 갓 전역해 선배를 따라 혜화동 골목에 위치한 어느 사무소에 방문한다. 그곳은 구성원이 연구소장 최열과 여성 연구원 단 둘뿐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였다. 이들은 1982년 출범한 한국의 첫 민간 환경운동단체다. 당시 전국 각지의 대학과 거리에서는 전두환 정부에 대한 크고 작은 시위가 한창이었고, 유시민은 "이런 시국에 한가하게 무슨 공해문제를 연구한다는 거냐"며 최열을 놀렸다. 둘의 첫만남은 유시민 저 『나의 한국현대사』 한켠에 짤막히 기록돼 있다. 그때 최열이 저자에게 열변을 토하며 보여준 책이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었다.¹


          1962년 미국에서 출간된 『침묵의 봄』은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대중의 영역으로 이끌어낸 책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환경보다는 과학과 기술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하게 작동하고 있던 당시 미국에서 저자는 농약 제조업체의 살충제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며, 그와 같은 화학물질이 비인간과 인간 삶에 수행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지적한다. 『침묵의 봄』은 4월 22일을 지구에 날로 제정하는 데 계기가 된 동시에 오늘날의 환경운동에 힘을 더한 책이기도 하다. 


          레이첼 카슨은 저서 『침묵의 봄』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는 그가 쓴 다른 책들도 번역 출간돼 있다. 『침묵의 봄』 이전 카슨은 '바다 3부작'이라 불리는 세 권의 책을 집필했다. 그 중 첫 번째가 1941년 출간된 『바닷바람을 맞으며』다. 『바닷바람을 맞으며』는 바닷속 생물들이 살아남고 번식하는 과정과 관계를 천천히 묘사한다. 출판사의 소개말을 빌리자면, 카슨은 독자에게 인간의 척도를 포기하길 요구한다. 가령 "시계나 달력으로 재는 시간과 세월은 해안의 새나 물고기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빛과 암흑, 밀물과 썰물은 먹이를 먹을 시간과 굶주릴 시간, 적의 눈에 쉽게 띌 시간과 비교적 안전한 시간을 의미한다." 그는 단지 개별적인 생명체에 대해 쓴다. 그가 물고기들이 적을 '두려워한다'고 진술한다면 그것은 물고기가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두려움을 경험하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사람들이 깜짝 놀랐을 때처럼 행동하므로" 그리 묘사할 뿐이다. 그는 개별 생명체들에 인간을 투영하지 않는다. 카슨은 바닷속 생물에 대한 번역을 시도한다.²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주목 받았던 1960년대는 사회학자 가브리엘 타르드의 저작이 사회학의 대안으로 재평가된 시기이기도 하다. 사회과학이 제도화되었던 19세기 말 그 중심에 위치했던 사람이 뒤르켐이라면, 타르드는 그의 이론에 반대했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는 사회학을 과학과 같이 실증주의적으로 다루어선 안 되며, 과학과 철학 또한 분리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타르드가 제시한 개념 중 하나가 '신모나돌로지'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토대로 존재들의 차이와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존재의 근원에는 차이가 있어 존재에는 각각의 개별적인 특징이 있고, 부분적으로 유사한 점이 발견되더라도 그것은 서로가 동화된 결과일 뿐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은 계속해서 다투고 결합한다. 때문에 그는 '현실태'를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일은 '가능태'의 형태만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³ 타르드의 이론은 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엄격히 나누지 않는다. 행위자-연결망 이론(ANT)을 제시하고 재작년 타계한 브뤼노 라투르는 자신 이론의 숨은 선조로 타르드를 언급했다. 라투르는 그의 저서 『모나돌로지와 사회학』에 부록을 쓰기도 했다. 


          타르드와 카슨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인간 대상을 각각의 개별자로 인식한다는 한 지점에서 만난다. 그들은 익숙한 이원론의 바깥에서 그와 다른 방식으로 대상을 읽어낸다. 타르드가 각각의 차이를 가진 존재들의 개별적인 특징을 강조한다면, 카슨의 묘사 혹은 번역은 인간의 관점에서 쉽게 의인화되는 비인간의 관점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시도는, 오늘날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도 연결된다. 


          2020년 3월 일민미술관은 〈새일꾼〉 전시를 개최했다. 참여 그룹 중 하나였던 이동시는 ‘동물당 매니페스토’라는 이름을 걸어 동물정치를 주제로 한 설치 및 영상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 동물당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창당을 도모했지만 실제로 성사되지 못했고, 미술관 큐레이터의 제안에 응해 팀을 꾸려 그룹명 이동시로 전시에 합류했다. 대신 그들은 퍼포먼스 형식을 빌려 동물당 창당 대회를 열었다. 가상의 공간을 전제로 한 이들의 설치 작품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동물당을 'SF적으로' 표현한다. 이에 대해 김한민은 동물당이 "인간중심적인 기존 정치 체제에 가장 급진적인 도전"인 동시에 "당사자 정치가 아닌 옹호 활동이 필연적인 동물 정치에 있어 동물의 입장에 서는 일 자체가 SF적 상상력"을 요한다고 진술하며 번역의 어려움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번역은 동물심(心)의 번역이다.


          동물당에게 비인간 동물의 마음을 전달하기란 한 편의 SF영화를 상상하는 일과 같이 확신 없이 전개되는 작업이다. 자신의 언어와 질서를 내면화한 인간에게 비인간 생명체의 심은 미지의 영역과 다르지 않다. 타르드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단지 가능태만으로 설명 가능한 무엇이다. 참고로 나는 지금껏 시계나 달력으로 재는 시간의 바깥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동시에 오역된 채로 굳어진 더 많은 대상들이 제 모습이 드러나길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1941년 카슨의 시도가 2024년의 나에게 퍽 쉽지 않은 작업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비인간의 원문을 우리는 얼마나 올바로 옮기고 이해해왔나. 글을 쓰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노트북 상단의 시계를 확인하며, 나는 여기 쓰인 1과 12 사이의 숫자가 당연하지 않은 어떤 영역을 잠시나마 상상한다.











1 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돌베개. 2021. p.259

2 레이첼 카슨. 『바닷바람을 맞으며』. 에코리브르. 2017. 알라딘 책소개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0361700&start=slayer

3 가브리엘 타르드, 이상률 역, 『모나돌로지와 사회학』, 이책, 2015. 알라딘 책소개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1572116

4 아네르스 블록·토르벤 엘고르 옌센, 황장진 역, 『처음 읽는 브뤼노 라투르』, 사월의책, 2017, pp.30-31

5 물결 편집부, 《물결》 1호, 두루미, 2020, pp.20-21






※ 본 글은 2024년 1학기 건국대학교 디자인기획전공 대학원 과정의 ‘디자인문화기획’ 수업을 바탕으로 쓰인 에세이를 일부 수정한 것이다. 무단 복제 및 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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