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 아버지, 드립력이 느셨다.

망상과 현실 사이 밑도 끝도 없는 드립

by 설작가

지난주가 엄마와 교대하는 주였는데

눈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한 주가 늦어졌다.


그때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주엔 어려울 것

같고 다음 주에 가야 될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엄마의 실망한 기색이 그대로 느껴졌다.


정적에 이은 한숨 소리...

눈길을 뚫고 아들이 오는 것이 무리임을

엄마도 머릿속으로는 이해하셨겠지만

주말만 기다리며 견디셨을 엄마가

순간 새어 나온 감정을 막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엄마도 많이 힘드신가 보구나...'


한참 후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눈이 많이 오니 오지 말라고,

당연히 엄마가 간병하는 거고

너희는 한 번씩 와서 도와주는 거니

전혀 부담 갖지 말라고 하셨다.


순간의 아쉬움과 서운함은 숨길 수 없었지만

다시 이성적으로 마음을 정리하신 것 같았다.


"다음 주엔 꼭 갈게요."



목요일 오후부터 휴가를 내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족발과 보쌈을 사들고 병원에 갔다.


"너는 족발이랑 보쌈을 사 오면서

어떻게 소주를 안 사 올 수가 있냐?"


아버지는 여전하셨다.


아버지는 정말 맛있게, 또 많이도 드셨다.

아버지에게 이발, 면도, 목욕을 시켜드리고

때도 밀어드리니 정말 개운해하셨다.


오른 다리와 달리 앙상해진 왼 다리를 보니

마음이 짠했다.

운동을 못하면 이렇게 순식간에

근육이 빠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버지는 몸이 상쾌해서인지

밤에 깨지 않고 푹 주무셨다.


다음날 아버지를 재활치료실로 모시는데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여긴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곳이야."


아버지는 이곳 사람들이 아버지께 특별히

잘해주신다며 여기서 본인이 제일 인기란다.


"여기 선생님들은 내 모자 한번 만져보는 걸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나도 자기애로 치면 어디서 안 빠지는데

확실히 아버지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아마 넌 믿기 어렵겠지만

이곳 사람들이 날 신격화한다.

이건 진짜여~"


아버지는 내가 범접할 수준이 아니구나.

이게 뇌손상에 따른 망상이건 뭐건 간에

아버지가 이곳에 만족하시니 좋았다.



치료 끝날 시간이 되어 밖에서 대기하는데

치료사분이 급하게 아버지 보호자를 찾았다.

아버지가 휠체어에서 굴러 떨어지셨단다.


아버지 말씀으론 내가 옆에서 자고 있어서

깨우려고 여러 번 불러도 대답을 안 하자

날 깨우려고 일어서다 넘어지셨단다.

또 헛것을 보신 모양이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내가 순간적으로 낙법을 해서 괜찮아."


이 상황에서도 자기 자랑...


"병원이 나 때문에 발칵 뒤집어졌다.

나 넘어졌다고 위에 보고가 돼서

원장도 뛰어오고 난리가 나브렀어.

얼른 여기 선생님들 몇 명 계신지 세봐라."


"그건 왜요?"


"오늘 여기 선생님들 다 퇴근도 못하고

밤새도록 손들고 서 있어야 한다.

관리하는 환자가 넘어지면 그래.

미안해서 커피 한 잔씩 돌려야겄다."


대충 알겠다고 얼버무리고

다음 치료를 위해 재활치료실로 옮겨드렸다.


치료가 끝나고 나오는 아버지 표정이 밝았다.


"원장 선생님이 사람들 데리고 또 내려오셨다.

다친 데 없는지 내 상태 확인할라고.

내가 벌떡 일어서서 움직이는 걸 보시더니

깜짝 놀라면서 감동을 하시더라."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환상 속의 그대인가...


"원장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 아냐?

'이렇게 놀랍게 회복이 빠른 환자는 처음입니다.

선생님을 좋은 사례로 남겨서 보고하려고

모두가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선생님에게 우리 병원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소설이 확실하네.

하지만 아버지는 진지했다.


"그래서 내가 원장님한테

이게 다 내 담당 치료사님 덕분이라고,

나를 잘 다루시고 정말 훌륭하신 분이라고

원장님 앞에서 면 좀 세워드렸다.

치료 끝나고 고맙고 미안해서 직원들이랑

커피 사드시라고 20만 원 드리고 왔다."


그렇게 지갑을 챙기고 돈을 세시더니

다 계획이 있으셨구만~

통장 잔고도 없는 분이 마음은 부자네~



저녁식사 후 아버지와 밖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사고뭉치가 퇴원해서 심심하시겠어요.

그래도 걔 있을 땐 병실에 활기가 돌았는데"


문제도 일으키고 활기도 불어넣었던,

아버지가 좋아했던 사고뭉치가 퇴원을 했고

그 자리엔 다른 아저씨가 오셨다.


"너 내 앞에 새로 들어온 사람 봤냐?"


그 아저씨는 큰 뇌수술을 받으신 건지

머리 왼쪽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 사람, 야구배트로 머리를 맞았다.

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한테."


"진짜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물어보셨어요?"


"바보야, 그걸 예의 없이 어떻게 물어본다냐?

이거 완전 엉터리 구만~"


또 아버지 소설이 시작된 건가...


"그럼 그냥 아버지 혼자 생각이네요?"


"그걸 꼭 물어봐야 아냐? 딱 보면 알제.

너는 어떻게 된 게 그것도 모르냐?"


"그럼 친구한테 맞은 건 어떻게 아셨어요?"


아버지는 어이없다는 듯 말씀하셨다.


"아무나 야구배트로 머리를 친다냐?

그런 건 가장 친한 놈이 치는 법이여.

제일 친한 친구 아니면 그런 짓 못해.

똑똑한 줄 알았더니 이놈 순 엉터리 구만~"


나도 사람들에게 인생 편하게 살기

딱 좋은 캐릭터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지만

아버지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전인권 뺨치는 그것만이 내 세상이네~



친한 친구 둘이 잠깐 얼굴이라도 보자며

곧 병원 앞에 도착한단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안 돼서

아버지를 두고 내가 잠깐 내려가야 했다.


"아버지, 잠깐 누워 계세요~

잠깐만 내려갔다 올게요."


아버지를 침상에 앉혀드리고

휠체어를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셨다.


"어이쿠!!"


하마터면 머리가 어디에 부딪치실 뻔,

더 하마터면 침상에서 떨어지실 뻔했다.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쳐다봤다.


"와... 진짜 큰일 날 뻔했다.

아까 한번 굴러서 20만 원이 나갔는데

이번에 또 굴렀으면 20만 원 또 나갈 거 아니냐.

하마터면 거지될 뻔했다."


어휴... 뇌를 다치시니 이게 의도한 드립인지

진짜 아버지 생각인지 분간이 힘들다.


아버지는 계속 같이 내려가자고 하셨다.

어떻게든 나가서 담배를 피워보려는

속셈이 뻔해 그냥 누워계시라고 했다.


"뭐 사 오지 말라고 해라~

정 사 올 거면 담배나 한 갑 사 오라고 하고~"


얼굴 잠깐 보겠다고 이곳까지 찾아와 준

친구들이 참 반갑고 고마웠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얼마 안 담았다며

봉투까지 건네주는 그 마음도 참 고맙다.


잠깐 이야기 나누고 친구들이 건네준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얼른 올라갔다.


"손에 든 건 뭐냐?"


아버지는 물건부터 확인하셨다.


"애들이 떡 비슷한 거라고 주던데요?

지금 드실래요?"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워 밖으로 나갔다.


"그게 떡 비슷한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또 담배 드립인가...


"그냥 떡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떡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예상치 못한 드립이었다.

그 자리에서 떡을 다 드시고 물으셨다.


"담배는 안 사 왔든?"


"네. 안 사 왔어요."


"그거 얼마나 한다고... 쪼잔한 놈들..."



다음날 점심.

나와 교대하러 엄마가 병원에 오셨다.

아버지가 휠체어에서 떨어지셨다는 말씀을 듣고

엄마는 크게 놀라 어디 다친데 없냐고 물으셨다.


"안 가르쳐줘~"


"아픈 데가 있으면 말을 해야지 왜 안 가르쳐줘~

원장 선생님한테도 어디 아프다 말 안 했어?"


아버지는 씩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무한테도 안 가르쳐줬어.

그것은 죽을 때까지 나만 아는 비밀이야."



아버지의 이런 엉뚱함과 유쾌함이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힘이 되는 것 같다.


아버지께 지금껏 있었던 아버지의 드립들을

몇 가지 말씀드렸더니 본인 스스로

매우 흡족하신 듯 크게 웃으셨다.


"민아, 나중에 '아버지의 말씀'이라는

책을 내보는 건 어떻겠냐?"


네~ 그럴 줄 알고 이렇게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습니다.


빨리 회복하셔서 나중에 그 책 나오면

'내가 이럴 때가 있었나?'하고

웃으며 즐길 준비나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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