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병실 크리스마스

또 다른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곳

by 설작가

병실에도 크리스마스가 올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다.

병실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될 줄이야...

내 생애 가장 우울한 크리스마스 아닐까?


바깥세상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곳은 크리스마스의 흔적조차 없었고

어느덧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뭐야?

어두운 병실에 케이크가 등장했다.


오늘이 우리 병실 한 할머니 생신이었고

그걸 어떻게 아셨는지 다른 간병인께서

깜짝 이벤트로 케이크를 준비하셨다.


병실 사람들은 모두 모여 할머니께

생신 축하 노래를 불러드렸다.


마침 엄마가 병실 간병인들께 하나씩 드릴

작은 선물을 가지고 병원에 잠깐 들르셨다.

절묘한 타이밍~

작은 선물이었지만 뜻밖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모두들 감사하며 정말 기뻐하셨다.


"이모, 왜 나는 안 줘? 내껀 없어?"


앞 병상 사고뭉치 녀석이었다.

간병인들한테만 하나씩 돌린 건데

그걸 또 왜 안 주냐며 따지는 저놈도 참...


그걸 듣고 아버지는 엄마에게 말씀하셨다.


"혹시 내꺼라도 하나 더 있으면 줘~"


"이모, 케이크 더 없어? 케이크 더 줘~"


사람들은 그 애에게 케이크 맡겨놨냐,

염치도 없냐며 한 마디씩 했다.


아버지는 그 애에게 먹을 것 좀 갖다 주라고,

이것저것 귀찮게 해서 아무도 신경 안 쓸 때면

나에게 가서 좀 도와주라고 하셨다.


"아프면 먹어야 힘이 나~

자꾸 먹고 싶고 그래~"


병실에서 그 애 편은 아버지뿐이었다.



저녁을 먹고 아버지 머리를 깎아드렸다.

군대에서 이발을 배워둔 걸 잘 써먹는다.

바리깡이 없어 가위랑 빗만으로 깎았는데

그럭저럭 괜찮았다.


"오메~ 깨끗하게 이발하셨는갑소이~"


병실에 들어오니 먼저 말을 걸어주신다.

그새 병실 분들과 조금 친해진 것 같았다.


"총각은 몇 살이여?"


"마흔입니다."


"워매~ 마흔? 난 서른으로 봤는디?

인상이 참 좋네이~ 결혼은 했어?"


사고뭉치 녀석이 또 끼어들었다.


"워~ 충격이다 충격! 형이 마흔이라고?

난 스물여섯으로 봤는디?"


병실 분들과 음식을 같이 나눠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밤이 깊었다.

이제야 병실 가족의 일원이 된 것 같았다.



밤새도록 신음하시는 아버지를 주물러드리고

수발을 드는 동안 벌써 새벽이 왔다.


"오메, 눈 와야~"


새벽 5시가 조금 넘었는데

창가 쪽 할머니가 벌써 잠이 깨신 모양이다.

눈이 온다는 소리에 하나둘 잠에서 깼다.


사고뭉치 녀석은 지금 나가서

눈을 맞아야겠단다.

간병인 이모가 어딜 나가냐고 말렸지만

떼를 써서 기어이 밖으로 나갔다.


"쟈가 그래도 눈 좋아하는 것 봉께

젊네, 젊어~"


이 모든 상황들이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또 다른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다른 세상으로 내가 들어온 기분.

이분들에게는 이 병실이 현실이겠지만

나에겐 어쩌다 경험하게 된 비현실 같았다.

나도 조만간 이게 현실이 될지 모르지만...


내가 있을 때 아버지 목욕이라도 한번 더

시켜드리면 좋을 것 같아 목욕 준비를 하고 있으니

앞에 계신 베테랑 간병인 분이 요령을 알려주셨다.


휠체어에 태우는 것도 시범을 보여주시고

샤워실까지 오셔서 쉽게 목욕시키는 요령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지금까지 모든 과정을 요령 없이 내 힘으로만

했더니 젊은 나도 삭신이 쑤시고 힘이 들었는데

요령을 배우고 나니 훨씬 수월했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셨는지 중간중간 오셔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까지 해주셨다.


시원하게 때도 밀고 손톱도 깎고 면도도 하시니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셨나 보다.


"민아, 커피 한잔 먹자~"


앞에서 보고 있던 사고뭉치가 말했다.


"커피에 미쳤구만~ 또 커피여~"



드디어 2박 3일 간병을 마치고

엄마와 교대해 병원을 나서는데

그동안 여기 있는 분들과 친해진 것 같아

돌아서는 발길이 가벼웠다.


아버지께 다시 오겠다고 작별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는 "민아!"하고 부르시며

내 손을 꽉 움켜잡으셨다.


"담배는 주고 가야지~"


어휴... 그럼 그렇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해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내가 가고 저녁에 그분들과 어울려

이야기도 많이 나누며 친해지셨단다.


엄마의 시집살이도 끝난 것 같았다.

어쩌면 엄마가 시집 생활에

조금 적응을 하신 건지도 모르겠다.

뭐가 어떻든,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병원에서 부모님도 뵙고

크리스마스가 가기 전 집에 와서 가족도 보니

내가 산타가 된 기분이다.


산타의 할 일을 다 했으니

오늘은 기분 좋게 한잔 하고 자야겠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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