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오늘, 잠 못 드는 밤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죽어간다.

by 설작가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집에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이번 주말을 아버지 병간호를 하고

다시 회사 숙소로 돌아오기로...


주중에 윤이에게 문자가 왔다.


"아빠가 주말에 안 오신다고 하니까

준이가 갑자기 엄마랑 놀면 재미도 없고

맛있는 것도 못 먹는대요.

그리고 지금 계속 울고 난리예요.

아이고~ 불쌍해서 어쩌나..."


준이가 날 이렇게 기다리는 줄 몰랐네~

짜식, 있을 때 잘 좀 하지~

바로 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아, 아빠 안 올라가서 많이 서운했어?

근데 아빠랑 놀 때마다 준이는

아빠가 맨날 이긴다고 짜증 냈잖아~

엄마랑 놀면 준이가 이기니까

더 좋은 거 아니야?"


"그래도 아빠랑 노는 게 더 재밌어요~

지더라도 아빠랑 놀면 도전정신이 생겨요~"


"오~ 도전정신~

그런 생각을 다 하고 기특하네~

엄마랑 연습 많이 해서 다음 주말에 붙자!

그리고 엄마한테 먹고 싶은 거 얘기하면

엄마가 다 해 주실 거야~"


"아빠가 해주는 요리가 더 맛있어요~"


아이들이 내 음식을 기다릴 줄이야...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 중 하나가

요리를 시작한 것이다.


준이 마음은 속상하겠지만...

그런 준이와 통화하는 내내

아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아이들이 아빠의 빈자리를 느낀다는 것,

아빠를 그토록 기다린다는 것...

왠지 뭉클했다.


언젠가 준이가 말했다.


"저는 나중에 적어도 아들 셋은 낳을 거예요."


이유를 물으니


"돌아가면서 간병을 하려면

아들이 셋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형과 내가 주말에 교대로 간병하러 내려가며

애쓰는 모습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나 보다.

아무 생각 없는 줄 알았는데...

속으론 다 뭔가 생각하고 있었구나. 많이 컸네~



병원에 도착해 엄마와 교대를 해드렸다.

내내 병원에만 있던 엄마에겐

2박 3일은 짧은 시간이다.


밀린 집안일에, 병원에서 약도 타시고

필요한 서류도 준비하시고,

아버지 드릴 반찬도 만드시고...


병원을 떠나는 엄마에게

옆 환자 보호자가 인사를 했다.


"언니는 좋겠네~

나도 딱 세 시간만이라도 바깥공기 쐬면서

돌아다니면 소원이 없겠네.

부럽다..."


엄마 상황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구나.

환자도 환자지만 환자보다 더 불쌍한 게

기약 없는 병수발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배우자가 아닐까 싶다.


내가 환자라면 아픈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모를 것 같은데

이곳에서 보면 하나같이 정반대다.


환자들이 배우자를 힘들게 하고

막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어쩜 저리 염치가 없을까 싶을 정도로...


아프면 다들 저렇게

자기 힘든 것밖에 모르게 되는 것일까?

옛날 남자들은 다 저런 것일까?

병원에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아버지는 내게 담배를 사 오라며 돈을 주셨다.


"아버지, 다른 건 다 해 드려도 그건 안 돼요.

앞으로 또 담배 말씀하시면

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너는 그게 효도인 줄 알지?

그건 효도 아니다."


"그러다 아버지 또 쓰러지세요."


"원장 선생님이 담배 피워보고

머리에서 연기가 빠지나 안 빠지나

확인해 보라고 하셨다.

얼른 가서 사 와!"


아버지 고집을 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한번 우기기 시작하시면 답이 없다.

또 언제까지 실랑이를 해야 하나...


아버지는 몇 년 전 암수술을 하셨었다.

원인은 담배.

이번 뇌경색도 담배와 무관치 않을 텐데

그런 분이 아직도 담배를 찾으신다.


"의사 선생님이 아버지 담배 피우시면

이번엔 돌아가실 수도 있대요."


"내가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긴 사람이여.

난 죽는 거 안 무섭다. 얼른 사 와.

내가 사 오면 보루로 살 건데

니가 사면 한두 갑만 살 거 아니냐. 그게 낫지."


"아버지는 안 무서우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무서워요.

아버지 이렇게 되시고 엄마, 형, 저까지

모든 가족이 아버지한테 매달려 있잖아요.

아버지는 혼자의 몸이 아니에요."


그 뒤로도 계속 고집을 부리셨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시 병실로 들어가 아버지를 눕혀드리니

낑낑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전엔 눕혀드리면 혼자 못 일어나셨는데

이젠 혼자 겨우 일어나실 정도가 됐다.

그래도 아직 왼쪽 팔다리가 마비라서

걷지 못하시는데 마음은 이미 걷고 계신다.

그렇게 현실 세계와 머릿속 세계가 달라

넘어져 큰일 날 뻔한 적이 여러 번이라

눈을 떼지 말고 계속 지켜봐야 한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를 잡으며

한 걸음씩 걸으려 하셨다.


"어딜 가려고 그러세요~

이러다 또 넘어지면 큰일 나요~"


나는 눕히려, 아버지는 버티려 실랑이가 있었다.

병실 사람들은 우리의 몸싸움을

걱정스럽게 지켜봤다.


결국은 눕혀드렸지만

아버지는 몹시 분하신 모양이었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씀이 없으셨다.


어찌어찌 취침시간이 되었다.

아... 오늘 하루도 가긴 가는구나.


하지만...

병실에서 오직 나만 하루가 간 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밤에 또 탈출을 시도하셨다.

혼자 자리에 앉아 신발을 찾으셨다.


"나가야겠다. 신발 좀 신겨라."


"이 밤중에 어딜 나가시게요~"


"갈 데가 있으니까 그러제. 빨리 신겨!"


다 자는 밤에 이게 무슨 민폐인지...

왜 이렇게 쓸데없이 고집이 세신 건지...


그렇게 눕히고 일어나고를 몇 번 반복했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것 같았다.


"못 나가시니까 포기하고 얼른 주무세요.

저는 오늘 날밤 샐 거니까 알아서 하세요.

아버지, 일부러 저 잠 못 자게 하려고

이러시는 거 아니죠?"


아버지는 힘으로는 내게 안 된다는 걸

느끼셨는지 감정에 호소하셨다.


"뇌가 다쳐서 그래. 뇌 다치면 이래.

빨리 신발 신겨~"


"뇌는 아버지만 다치셨어요?

여기 있는 분들 다 뇌 다치셨는데

다들 그냥 주무시잖아요.

왜 아버지만 통제에 안 따르고

자꾸 고집을 부리세요!

저는 안 자고 여기 버티고 서 있을 테니까

맘대로 하세요!"


난 아버지가 보란 듯이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아... 오늘이 첫날인데 벌써 자긴 글렀구나.

모레까지 어떻게 버티나...


그렇게 두 시간 정도 대치를 하다가

아버지는 지쳐 잠드셨고

난 잠이 오지 않아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군 시절 생각이 났다.

제대하는 그날만을 기다리며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랐던 그때...


아침에 눈을 뜨면 빨리 오후가 되길,

오후가 되면 빨리 잠잘 시간이 오길...

이게 병원에서의 일상이다.

그냥 시간이 빨리 가주기를 바라며

버티는 삶...


물론 빨리 회복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하지만 가끔 우울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만

모두가 그저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며

연명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물론 나도, 보호자들도 다 마찬가지다.


아버지 대소변을 도와드리고

목욕을 시켜드리고, 안마해 드릴 때는

보람도 느껴지고 그런 생각이 들지 않지만


재활 스케줄이 없는 주말이 되면

힘들고 무료한,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되는

시간들이 찾아온다.

어두컴컴한 병실에서 모두 자거나

핸드폰만 보며 시간을 죽이는...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죽어간다.

나 역시 오늘

내 삶의 소중한 하루가 죽어가고 있는데

그저 빨리 시간이 가기만을 바라다니...


거동 못하는 환자들과 내가 다를 게 뭔가.

그렇다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뭘까?

이런저런 잡념들로 잠 못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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