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절 시험에 들게 하시나요...

원망과 분노로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by 설작가

모든 일에는 음과 양이 있는 것 같다.

아버지가 몸을 점점 가눌 수 있게 되면서

고집 또한 점점 세지셨다.


혼자 일어나 걸으시려다 넘어져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도 늘어났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개인택시를 뽑아 병원 지하주차장에 세워놨다고

우기시는 바람에 택시회사 동료분과

통화도 시켜드리고 주차장을 수차례 돌고

관리아저씨께 확인을 시켜드려도 믿지 않으셨다.

입원 전 개인택시를 갖고 싶다는 열망이

뇌를 다친 이후 망상으로 굳어져버린 것 같았다.


또 택시 운전을 하며 5억을 벌었는데

아버지 돈, 신용카드 모두 엄마가 없애버렸다며

죄를 뒤집어 씌우셨고 여기저기 돈 쓸 일이 많다며

매일 몇 번씩 현금인출기에 돈을 뽑으러 갔다.

잔액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도 믿지 못하셨다.


어쩌면 아버지의 상상 속에서라도

본인이 부자라고 생각하시는 게

다행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족들 고생은 별개로 치자면...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는 망상이었지만

이번엔 선거에 나가야 한다며

허황된 고집을 부리셨다.


"이번에 선거에 나가야 하는데

난 가진 것도 없고, 연설 잘하는 것이 무기인데

말이 어눌해져서 그게 제일 뼈아프다."


"권선생(재활치료사)을 연설시키면 잘할 거다.

안선생(재활치료사)은 이번 내 선거에

인생을 걸어보겠다고 했다."


거기서 끝날 일이면 그냥 듣고 넘길 텐데

있지도 않은 선거 사무소에도 나가야 하고

이런저런 사람도 만나야 하고

급하게 처리할 일들이 많다며

여기저기에 연락을 하시거나

자꾸 나가야 한다며 고집을 부리셨다.


답답한 병원에서 그나마 아버지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 상상뿐이라서

지금까지 어떤 소설을 쓰시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시건 최대한 맞춰드렸다.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관련 책자, 의사까지도

환자를 최대한 지지해주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뇌졸중이나 치매 환자의 망상에 대해서도...


전문가의 말이 맞겠지만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고

가족들은 버티다 지쳐갔고

정말 이게 최선인 건지 의심이 갔다.


그 망상이 아버지에겐 기정사실이 되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가족들에게

불만을 표시해 우리는 육체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이 더욱 힘든 상황이 되었다.


더 이상 이대로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환상을 꺾어드릴 때가 온 것 같았다.


"아버지, 무슨 선거를 나가시려고요~"


"OO 군수"


"인터넷 쳐보니 그 군수 멀쩡히 잘 있어요.

거긴 이번에 보궐선거를 하지도 않아요."


"그래? 그럴 리가 없는데?

안 죽었냐?"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에게 안 죽었냐니...


"아버지, 지금 전보다 많이 좋아지셨지만

아직도 아버지가 믿는 게

현실과 다른 점이 많아요.

나중에 다 말씀드릴게요."


아버지는 내 말을 믿을 수 없으신 것 같았다.


"저희가 다 들어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버지가 혼자 상상하시는 것,

맞지 않는 것도 많다는 건 알고 계세요."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일 수 있는 상상.

아버지께 진실을 알려드리는 것,

아버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자라는 사실을

알려드리는 것이 가혹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망상이 고집이 되어

주변 사람, 특히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눈으로 확인시켜 드리려

수차례 뺑뺑이를 돌고, 잠 못 자고 대치하며

그렇게 설 명절 2박 3일이 지나갔다.



엄마와 교대한 뒤 장모님 댁에 들러

차려주신 식사와 막걸리까지 한 병 먹으니

긴장과 피로가 동시에 풀리며 녹초가 되었다.


침대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아... 또 뭔 일이야...

엄마 전화가 뜨면 불길한 예감이 먼저 든다.


엄마는 거의 울먹이며 말씀하셨다.

내가 가자마자 아버지의 생떼와 폭언이

이어지고 있고 지금 엄마는 어쩔 바를 모르겠단다.


통화하는 도중 엄마에게 또 급박한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통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다시 전화를 드려도 받지 않으셨다.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으면

이제 막 교대해서 돌아간 아들에게

도와달라고 전화를 하셨을까?


난 엄마의 전화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다시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엄마에게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누구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데 가야 한다고 하셨고

지금 이 몸으로 누굴 만나고 어딜 가시냐는

엄마에게 심하게 대하셨단다.


결국 엄마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가버리라고 하시며 혼자 택시 타고 가겠다고

휠체어에서 일어서다 넘어지셨단다.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단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다시 휠체어에 앉혔지만

아버지는 엄마가 밀어서 넘어뜨렸다며

또 엄마에게 화를 내고 막말을 하셨단다.

통제불능의 상태가 된 것이다.


형과 나에겐 전혀 보이지 않던 언행이

배우자인 엄마에겐 가감 없이 표출됐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그저 엄마를 위로하고 안정시키는 것뿐.



그날 밤, 엄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이 밤중에 또 나가야 한다며 난리시란다.

너무 화를 내셔서 어찌할 도리가 없단다.


갑자기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감정의 물결이

소용돌이치며 저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아니 겨우 가라앉혀 놓았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의 감정이

내 마음을 다 뒤덮어버렸다.


그냥 아버지 말씀 다 무시해버리시라고,

한번 넘어지게 내버려 두시라고,

차라리 간병인을 쓰자고...


엄마에게 감정 섞인 답들만 나열했다.

엄마는 답이 될 수 없는 내 답안지를 들고

더 시름이 깊어지신 듯 한숨만 쉬셨다.


여리고 약한 우리 엄마.

아무리 속을 썩여도 아버지밖에 모르는 엄마를

더 궁지로 몰아넣는 말만 나는 계속 쏟아냈다.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이후

아버지에 대한 미움, 원망, 분노를 거두고

치유와 용서의 길로 접어드나 싶었는데

억눌러왔던 분노가 다시 끓어올랐다.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서 다 엎어버릴까?

다 자는 밤에, 이 새벽에 그게 가능할까?

내가 할 말을, 시나리오를 정리해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하자.


내가 그린 시나리오는 극으로 치달았다.

심장이 뛰어 밤새도록 잠을 잘 수 없었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이렇게 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분에게 긴 말,

분풀이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난 성인이 된 이후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마음속으로 편지를 쓰는 습관이 있다.


쏟아내고 싶은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아

최대한 절제해 예의 바르게,

아버지의 마음에 와닿게 전달하기 위해

마음속 묻어뒀던 말들을 혼자 되뇌곤 했다.

(언젠가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휴가를 내고 아버지께 편지 8장을 써서

실제 아버지 앞으로 보낸 적도 있었다.)


최근 그 습관이 없어지나 했는데

이번에 다시 시작됐고, 강도는 더 세졌다.


엄마의 인생이 불쌍한 만큼,

그걸 감사해하거나 미안해할 줄 모르고

함부로 하는 아버지의 행동을 지켜볼수록

원망과 분노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날이 밝으면 바로 병원으로 갈 것이다.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아버지께 어떤 말씀을 드릴 것인지,

나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확실한 건,

이번엔 전과는 다를 거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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