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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쓰러지셨다
15화
아이를 키우는 일, 부모를 모시는 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by
설작가
Dec 20. 2022
극약처방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다행히 그날 이후 아버지는
전처럼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으셨다.
얼마 전 병원을 옮기셨는데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중이셔서
몸을 사리고 계신 건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건 다행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날 일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아버지와 관계를 어떻게 다시 회복할지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엄마, 아버지가 그날 일 말씀 안 하세요?"
"별말씀 없으시다~
전에 한 번 말씀하신 거 빼고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싸가지 없는 자식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했다고..."
그래도 그 정도면 됐다.
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버지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강도에 차이는 있었지만 전에도 아버지와
한두 번 크고 작은 마찰이 있긴 했었다.
그때마다 아버지와 풀었던 방식은
그때그때 달랐으나 큰 틀에선 같았다.
아버지와 내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직접 대화를 나누지 않고
애꿎은 아내를 통해 소통한 적도 있었고,
술김에 아버지께 전화를 드려
그땐 죄송했다고 먼저 말씀드린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별말씀 없이
"취했으면 대리 불러서 들어가라"
는
한마디뿐이셨지만 그렇게 넘어갔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돌아보니 그게 아버지와 나의
갈등 해결 방식이었다.
이번에도 어떻게든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아무 일 없었던 듯 지나가리라...
하지만 이번엔 여느 때와는
달랐던 것이
아버지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거다.
엄마와 교대해 내가 아버지를 간병하며
2박 3일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우려와는 달리, 어쩌면 예상과 같이
우린 서로 아무 일 없었던 듯 행동했다.
모르는 척하시는 건지
진짜 기억에서 지워진 건지
꿈이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아버지는 평소와 같았다.
뇌를 다친 아버지의 뇌구조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머리를 깎아드리고, 씻겨드리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다.
문제는 밤이었다.
새벽 3시쯤 눈을 뜨신 아버지는
나가야 한다며 양말을 신겨달라고 하셨다.
'아... 또 시작이구나...'
새벽이라고, 다시 주무시라고 해도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밤중에 계속 설득하는 것은
옆에서 자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결국 포기했다.
나가시려면 휠체어를 갖다 드리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걸을 수 있다며 고집을 부리셨다.
"아버지 마음은 이미 걷고 계시겠지만
지금 이러시면 위험해요.
휠체어 갖다 드릴게요~"
아버지는 인상을 쓰며 화를 내셨다.
"내가 휠체어 필요 없다고
몇 번을 얘기했냐!"
첫날부터 잠을 못 자
예민해진 나도 맞받아쳤다.
"
그러면 저는 지금 새벽이라고,
다시 주무시라고 몇 번을 얘기했습니까!"
이 상태로 다시 누운다 한들,
다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도 못할 텐데
왜
불필요하게 감정 소모를 하고 있나 싶었다.
신발을 신겨드리고,
원하는 대로 다 하시도록 내버려 뒀다.
부축을 해드리면 또 심기를 건드릴 것 같아
넘어지시면 잡으려고 긴장 속에서 지켜봤다.
아버지는 난간을 잡고
일어나셨지만
부들부들 떨며 한
걸음도 못 떼셨다.
난간을 잡은 손은 도무지 떨어지질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실망한 듯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기신 아버지를 보니
다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시간은 어느덧 5시를 향해 갔고
아버지는 결국 포기하고 다시 누우셨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나 역시 아버지 옆 간병인 침상에 누웠다.
이제 상황 종료인 건가...
오늘 하루는 무사히 잘 보낼 수 있을까...
오늘 밤은 제대로 잘 수 있을까...
이제 막 새벽
, 하루의 시작인데
벌써부터 오늘 밤을 걱정하고 있다니...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간병 일기를 쓰기
시작할 때
썼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이제부터는
또 다른 육아 일기를 쓰려고 한다.
아이가 되어버린 아버지 이야기를..."
아이들은 부모가 아무리 말을 해도,
직접 만져보고 맛보고 넘어지며
자기 자신과 세상을 하나씩 알아간다.
아버지 역시 옆에서 어떤 말을 해 드려도
직접 체험하기 전까지는 소용이 없다.
아버지가 보신 환영이나 공상이
현실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아버지가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헛수고다.
나가야
한다, 걸을 수 있다는 환상도
말로는 설득이 되지 않는다.
직접 체험하고 부딪쳐보고 난 후에야
그제야 수긍하신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그걸 확인해도 또
똑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
이것만은 아이와 같지 않아도 되는데...
아이를 키우는 일, 부모를 모시는 일...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이해하는 일...
어쩔 수 없이 내가 이해해야만 하는 일...
아이를 키울 때는 육아서를 찾아보고
아이의 발달 단계를 공부하며
어떻게든 이해하고 잘 키워보려 노력했지만
정작 뇌를 다친 아버지의 입장과 상황을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생각이 들어 다행이다 싶다.
내가 노력하면 이런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게
될까
?
미움과 분노를 억지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녹여 없애버릴 수 있게 될까?
해보자! 후회라도 남지 않도록...
keyword
아버지
뇌
이해
Brunch Book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13
아버지, 절 시험에 들게 하시나요...
14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15
아이를 키우는 일, 부모를 모시는 일
16
감옥 같은 병원에서 찾은 돌파구
17
위로? 걱정을 가장한 폭력?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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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원체 무용한 것을 좋아하오. 똥, 방귀, 웃음, 농담,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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