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걱정을 가장한 폭력?

아무리 마음을 비워도... 현실의 벽은 높고 단단했다.

by 설작가

오전 사무실.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엄마다.

전화를 받기 전 불길한 예감부터 든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더 이상 생길 무슨 일이 있긴 한 걸까?



역시나 아버지가 엄마를 힘들게 하셨다.

시간이 가면 호전이 되어야 할 텐데

괴롭힘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었다.


밤이건 낮이건 나가자고 하는 건 기본.

택시 타고 나가겠다, 돈 뽑아라,

아무리 설득을 해도 오히려 화를 내는 아버지.


간밤에도 몇 번씩 나가겠다는 아버지 때문에

경비 아저씨도 짜증이 난 상태.

병실 사람들에게도 민폐고 창피다.


밥도 못 드시고 잠도 못 주무시는 엄마를

걱정하거나 이해하기는커녕 막말을 하신다.


한숨 쉬지 마라, 이혼해 주겠다, 가라,
사람들과 짜고 나를 정신병자 만들지 마라,
당신 때문에 되는 게 없다, 퇴원하겠다...


엄마가 옆에 오는 것도 짜증을 내는 아버지.

그래도 엄마는 아버지가 호전되기만을 바라며

그 모든 걸 온몸으로 견뎌내고 계셨다.


밥도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버지를 위해

정작 본인은 식사를 못하셨지만

아버지 계란 프라이를 챙기는 엄마.


조리실에서 계란 프라이를 하는 잠깐 사이,

아버지는 휠체어에서 혼자 일어나다 넘어지셨다.

꼬구라져 일어나지 못하시는 아버지를 보고 놀란

병실 사람들과 허겁지겁 뛰어온 간호사.


계란 프라이를 들고 나오니 이미 벌어진

이 상황을 보고 엄마는 얼마나 놀라셨을까.



아버지는 넘어지며 의자에 머리를 부딪치셨고

골반뼈가 괜찮은지 엑스레이를 찍어야 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상황 파악은커녕

엄마를 비난하는 것이 먼저였다.


"이게 다 자네 때문이네.
내가 퇴원하자고 할 때 퇴원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잠깐 사이에도 사고가 나는데

두고 가라, 나가겠다는 대책 없는 말만

되지도 않는 자기주장만 하시는 아버지.

모든 게 엄마 때문이라는 아버지.


본인이 다치면 감당해야 하는 건 엄마라는 걸,

가족이라는 걸 모르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으로

큰소리만 치는 아버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저렇게 평생을 엄마를 힘들게 하실까.


바보 같은 엄마는

평생을 그런 아버지만 보고 사셨다.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에 울고 웃고,

재활치료받는 모습을 보고 익혔다가

치료가 없는 주말에 아버지를 운동시키시고...

엄마의 모든 것은 아버지에게 맞춰져 있다.


그런 엄마에게 함부로 하는 아버지를,

힘들어하는 엄마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무기력하고 참담하다.


그래도 점점 호전되실 거라 믿고

이 상황에서도 찾을 수 있는 웃음과 깨달음,

행복이 있을 거라 믿으며

최대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려 애썼는데
역시나 현실의 벽은 높고 단단했다.


이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엄마를 위로하고 힘을 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아버지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 긴 터널의 끝이 있기는 한 것일까?



힘드시겠다, 힘들면 언제든 전화 주시라,
이번에 가서 알아듣게 말씀을 드려보겠다,
일주일 만이라도 간병인을 쓰는 건 어떠시냐,
그래야 가족 소중한 걸 아실 거 아니냐...


엄마는 간병인은 절대 반대였다.

간병인은 절대 버티지 못할 거라고...

돈도 돈이지만 아버지를 이렇게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신 거다.


내가 엄마를 위로하고 걱정한답시고

엄마가 받아들이지 못할 카드,

개인 간병인을 쓰자는 말을

너무 쉽게 던진 것은 아닐까?

걱정을 가장한 폭력은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딱히 드릴 말씀도,

답도 없는 이 상황에서 같이 한숨만 쉬고

어설픈 위로만 늘어놓는 게 정답일까?


위로. 참 어려운 것 같다.

위로에 대한 책을 보면 경청과 공감,

딱히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이 위로라고 하는데

참고 견디는 것 외에 방법이 없는 지금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드리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아버지가 아들이 큰 사람이 되라고

이렇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시나?


아버지와의 대화를 책으로 내볼까도

생각했었는데, 아버지께 희망을 드리고

관심을 돌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내가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싶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에 의하면

최하위 욕구가 충족이 되어야

그 윗 단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고 한다.


먹고사는 문제인 생리의 욕구와

다음 단계인 안전의 욕구까지는

병원 내에서 충족이 가능하다.


그다음 단계는 애정과 소속감의 욕구.

이 전 병원에서는 재활치료사분들과

관계가 좋아 이 욕구가 충족되었고

다음 단계인 존경받고 싶은 욕구까지

충족이 되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전 병원에 계실 때 사람들이

아버지를 신격화하고 존경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병원을 옮기신 후

애정과 소속감이 전에 비해 떨어지셨다.


그런 아버지께 가장 윗 단계의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 책 내기에 대한

희망을 드리려 했으니...


아버지가 이 병원에서 병실분들,
치료사분들, 간호사분들과
더 친분을 쌓고 잘 지내실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겠다.

그리고 존경.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아버지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쩌면 그런 자격지심이 오해와 망상,
고집의 큰 원인이 아닐까도 싶다.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더 좋은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다.

이제 며칠 후면 아버지를 만난다.
3일 동안 아버지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결과는 내 것이 아니지만
과정은 내 것이니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다시 마음속 편지 쓰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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