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잘 살아 왔구나... 잘 살고 있구나...

위로의 힘

by 설작가


얼마 전... 머리가 복잡한 일이 생겼다.
생겼다기보다는 알게 됐다는 게,
알면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
생겼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현 상황에서 더 안 좋아질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있었다.

이번엔 돈 문제였다.
규모도 얼마가 될지 모르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아버지 핸드폰으로

계속 빚독촉 문자가 왔었고

이번엔 집으로 경고 우편이 도착했단다.

아버지가 입원 전 아무도 모르게 저질러 놓으신

빚이 이자에 이자를 물고 계속 커져가고 있었다.


대책 없이 사고를 치시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이 모든 걸 어떻게든 수습하고 견뎌야 하는
이 상황에 한숨만 나왔다.

이런저런 복잡한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지금껏 웃으며 잘 버텨왔는데...
또 수습을 해야 할 일이 터지니
짜증도 났고 무엇보다... 막막했다.



회사에서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시간 되면 잠깐 차나 한잔하잔다.
전에 술 한잔하며 개인사를 나눴던 친구다.

이 친구 역시 아버지가 속을 많이 썩이셨는데
그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한편으론 아버지가 사고 칠 일이 없어 좋지만
한편으론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어 아쉽단다.

나에 비할 바가 안 되는 견디기 쉽지 않았을
과거 일들을 담담하게 얘기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상투적인 말보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누구보다 가정적인 남편으로, 아빠로
잘 살고 있는 친구의 지금 모습을 보는 것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그런 친구가 아버지의 근황을 물었다.
답도 없는 답답한 상황을 남일 얘기하듯
"뭐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하고
가볍게 툭 던지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퇴근 후 숙소 방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퇴근했나? 저녁은?"

다이어트도 할 겸 저녁을 안 먹었는데
어찌 알고 출출할 시간에 연락을 했네?

"크림 스파게티 먹을래?
맛은 없는데 내가 만들었다. 갖다 줄게~"

친구는 자전거 뒤에 냄비를 싣고
내 숙소 앞까지 손수 배달을 와줬다.

"얼마 전에 제주도 출장 가서 사 온
흑돼지 넣어서 만들었대이~
니 몇 시에 자나?
자전거로 한 바퀴 돌고 올 건데
10시쯤 그릇 받으러 올게~"

스파게티를 빌미로 술을 한잔하자는 것도
아니었고, 진짜 스파게티만 건네주고 갔다.
남자한테 심쿵 하네...

내가 먹어본 스파게티 중 제일 맛있었다. 감동 점수 다 빼고 맛으로만 승부해도 최고!

이런 게 진짜 힐링 푸드인가?
음식을 만들며 나를 생각한 그 마음도,
정겹고 순박한 사투리도,
이런저런 말 없이 냄비만 주고 가는 쿨함도...

곱씹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며
큰 위로가 되었다.



어찌 됐건 아버지 일은 잘(?) 마무리(?) 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그보다 내 주변을 돌아보며
더 큰 감사함과 행복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난 혼자가 아니라는 걸,
주변에 날 믿고 응원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란 걸
다시 한번 느끼는 요즘이다.

누구보다 잘 해내고 있다고,
어떤 상황이든 잘 헤쳐나갈 걸 믿는다고,
내가 인생의 롤모델이라는 친구

인디언의 '친구'의 뜻처럼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같이 가자는 친구

돈 벌어서 날 먹여살리겠다며
시골에서 먼저 터 잡고 부를 테니
기다리라는 친구

과거 문서에 박힌 내 이름을 보고
반가워서, 그냥 생각나서 연락했다고,
직원들이 다 나를 보고 싶어 한다며
언제 근처 오면 들려달라는 00시 과장님

무엇보다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아내
그리고 잘 자라주는 아이들

얼굴 한번 본 적도 없지만
이런 내 글을 보고 공감과 응원의 글을
남겨주시는 분들까지...

나, 잘 살아 왔구나...
잘 살고 있구나...
앞으로도 잘 살 수 있겠구나...
난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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