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같은 병원에서 찾은 돌파구

파리가 떠올랐다. 쉼 없이 유리창을 들이받으며 탈출을 시도하는...

by 설작가

"나가자. 신발 좀 신겨라."


아버지의 단골 멘트다.

병실 밖을 나가도 병원 안이라 답답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병실 밖이 낫다.


그렇게 하염없이 병원 복도를 맴돌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렇게 마시는 커피가 하루 다섯 잔은 기본.


나가 봐야 별게 없으니 다시 병실로 들어오지만

조금 후 다시 답답하다고 나가자고 하신다.

특히 재활치료가 없는 주말엔 이게 일과다.


편마비로 인해 시야가 제한적인 아버지는

같은 곳을 몇 번을 돌아도 늘 새로운 듯

이리 가자, 저리 가자를 반복하신다.

병원을 탈출할 구멍을 찾으시는 거다.


한밤중에도 일어나셔서

나가자, 담배 사러 나가야 한다,

문이 다 닫힌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 드려도

같은 곳을 대여섯 번 확인하시고도

포기를 못하신다. 어딘가로 나갈 수 있단다.


그렇게 밤낮없이 계속 뺑뺑이를 돌며

'아버지는 왜 내 말을 듣지 않으실까',

'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애를 먹이실까'

아버지를 탓하는 마음이 올라왔다가도

한편으론 그런 아버지가 안쓰럽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쩌다 집 안으로 들어온 파리가 떠올랐다.

창밖에 보이는 바깥으로 나가려고

유리창을 계속 들이받는 파리...

20210404_091242.jpg 동백꽃을 보며 생각에 잠기신 아버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건 오직 이 창문뿐.


아버지는 얼마나 답답하실까.

코로나 때문에 병원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고 외부인과도 철저히 차단된 현실.

이런 병원 생활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아버지에게 병원은 감옥이었다.


아버지는 나도 이제 늙은 것 같다며,

손자들이 보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이셨다.

아버지는 무료해질 때면 담배를 찾으셨고

병실은 답답하다며 나가자고 하셨다.


아버지를 위해서뿐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아버지의 관심을 돌려야 했다.



그런저런 이유로 난 의도적으로

아버지께 화두를 던지며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는 나와 대화 나누는 것을 좋아하셨다.


아이들이 했던 말이나 에피소드,

회사에서 있었던 일, 내가 읽은 책,

정치, 시사, 시, 그림, 꽃, 문학...

우리의 대화 주제는 끝이 없었다.


아버지를 눕혀 스트레칭시켜드리고

주물러 드리는데 아버지가 껄껄 웃으셨다.

주변 사람들은 아버지가 웃는 건지

아파서 찡그리는 건지 한참을 쳐다봤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아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이 갇힌 공간에서 그렇게라도

아버지가 웃을 수 있게 해 드렸다는 것.

그걸 곱씹으며 웃을 수 있는 분이라는 것.

모든 게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깊은 산속 옹달샘 동요 알지?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왜 그냥 물만 먹고 갔을까?"


이번엔 뜬금없이 동요를 화두로 던지셨다.


"잠이 덜 깨서 그랬을까요?"


"세수를 하러 왔는데 물이 너무 맑은 거야.

그 맑은 물에 자기가 세수를 하면

물이 더러워져서 뒤에 온 누군가가

기분이 좋지 않겠지.

그래서 토끼는 세수하러 왔다가

다음 사람을 생각해서 살짝 물만 한 모금

마시고 돌아 간 거지.

그 마음이 얼마나 예쁘냐~"


아버지는 잠시 감상에 빠지셨다.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셔요~

병아리 떼 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이 노래 알지? 이건 무슨 뜻일까?"


아무 생각 없이 불렀던 노래인데...

그냥 봄노래 아닌가? 이게 무슨 뜻이 있었나?


"이건 개나리를 보고 만든 노래 같다.

봄이 되면 개나리가 노랗게 피고

얼마 안 있다 푸른색으로 금방 바뀌잖아.

그걸 보고 노란 병아리 떼가 잠깐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다고 표현한 거지.

그렇게 세월이 빠르게 흐른다는 거야.

참 세월 빠르다."


아버지와 정치를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면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이렇게 동요를 주제로 이야기하니

기분 좋게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동요 가사를 곱씹어 보면 좋은 게 참 많아.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멀리멀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지러 주어라'

이 노래 가사를 한번 떠올려 봐라.


동생이 학교 갔다가 돌아왔는데

누나가 냇물에서 나물을 씻고 있었어.

반가운 마음에 '누나!' 하고 부르거나

누나 옆에 돌을 던지거나 큰 돌을 던지면

누나가 놀라겠지. 그래서 동생은

누나가 놀라지 않게, 작은 돌 하나 주워서

앞에 살짝 퐁당하고 돌을 던진 거지.

그 물결이 누나 손등에 살짝 닿아서

누나가 기분 좋게 알아볼 수 있도록.

동생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냐."


아버지는 평소 생각이 많으시다.

병실에서도 혼자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골똘히 생각에 잠기실 때가 많다.


아버지의 뇌경색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아버지가 다른 기억을 잃으셔도,

인지가 조금 떨어지시더라도

감동받는 능력만큼은 잃지 않으시길

기도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버지의 그 능력은 여전하셨다.


오히려 답답한 병실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 생각뿐이라서

이런저런 기억과 생각을 떠올리는 것,

그것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가장 큰 낙인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아버지께 한 번씩 전화가 온다.


"전에 니가 읽어줬던 윤이가 쓴 시 있지?

그거 좀 엄마한테 보내라."

20210314_110050.jpg 윤이(5학년)는 가끔 시를 쓰는데 윤이가 쓴 시만으로도 한 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는 엄마와 계시는 동안에도

나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곱씹으며,

엄마와 공유하는 중이신 것 같았다.

이런 게 아버지께 큰 기쁨이 되는구나...


그 후로 책을 읽다 좋은 구절이 나오거나

아이들과의 재밌는 일이 있을 때면

'나중에 아버지께 얘기해 드려야겠다'

생각이 들며 메모를 한다.


그렇게 생각할 거리를 하나씩 드리는 것도

아버지의 뇌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버지는 또 그걸 어떻게 해석하고

재가공을 하실지...


다음에 병원에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보는 건 어떨까 싶다.


"아버지, 저랑 나눈 대화들을 모아서

책 한 권 내볼까요?"


아버지의 삶에 새로운 돌파구가,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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