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다 쏟아버렸다.

by 설작가

아침에 일어나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발걸음을 떼긴 했지만
나도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멀쩡히 잘 계시는 아버지께 갑자기 찾아가서
혼자 화내며 분노를 쏟아낼 수도 없는 일.
차라리 아버지가 내게 보기 싫은 면을
보여주셨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병원 복도에서 엄마를 만났다.
아버지는 아침 6시부터 9시인 지금까지
세 시간째 신발을 찾고 계신단다.

신발을 찾아드리고 휠체어를 태워드리면
또 누굴 만나야 한다며 나가려 하실 테고,
그렇게 무리하시다가 또 넘어져
큰 사고가 날 게 뻔해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한 발짝 떨어져 지켜만 보셨단다.

본인 뜻대로 되는 일도 없고
신발 하나 찾는 것도 할 수 없는 아버지는

이 상황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상태였다.

"아버지, 저 왔어요~"

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나가자며 신발을 신겨 달라고 하셨다.

"어디 가시게요?"

"너도 니 엄마랑 똑같은 걸 물어보냐?
내가 어디를 가든, 어디든 가면 되제!"

아버지는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그래, 차라리 잘 됐다.
아버지랑 담판 짓자!'

"그러시죠. 어디든 가시죠!"

내 말투와 태도는 평소와 달랐다.
아버지에게 신발을 신겨드리고
휠체어에 태워드리는 모든 동작에
지금까지의 조심스러움과 배려는 전혀 없었다.

밤새도록 시달린 엄마,
갑자기 아침에 다시 나타난 아들,
아버지를 데리고 거침없이 나가는 나를
병실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봤다.

병원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있을 곳은

복도 옆 샤워실뿐이었다.
샤워실로 가는 동안까지도
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샤워실에 들어가자마자 보란 듯이
문을 "쾅" 닫고 문을 잠갔다.
생각보다 문이 세게 닫혀
그 소리에 나도 놀라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때 이미 내 스탠스는 정해져 버렸다.

"샤워 안 할 건데 왜 이리 데려왔냐?"

난 시작부터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금 제가 왜 여기로 모시고 온 건지
진짜 모르시겠어요?

아버지는 엄마가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 같습니까?
막 해도 되는 사람입니까?

간호사, 재활치료사 선생님들께는
친절하게 잘하시면서 엄마한테는
왜 함부로 하고 힘들게 하십니까?

아버지한테는 엄마가
막 해도 되는 사람인지 몰라도
저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뭔데 엄마한테 화내고, 욕하고
고집부리고 폭언을 하십니까?
엄마가 불쌍하고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아버지는 발끈하셨다.

"내가 무슨 욕을 했다고 그러냐?
엄마가 그러든?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냐?
어디 한번 말해봐라."

"그걸 제가 다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병실 사람들도 저한테 다 얘기합니다.
입에 담기도 싫습니다.

아버지가 평생 엄마 힘들게 한 건
기억에서 지워버렸습니까?

엄마가 매일 울고 힘들어하는 모습,
아버지께 함부로 취급당하는 모습
더는 못 지켜보겠습니다."

20년이 넘도록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던,
마음속 깊숙이 묻어만 놓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쏟아져 버렸다.

처음 보는 아들의 모습에
아버지는 많이 놀라고 당황하신 것 같았다.

"이 자식 애비한테 말하는 것 좀 봐라.
니가 이제 나를 안 보려고 작정했구나.
너 이놈 호적에서 파 버려야겠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말인 줄 알았던
호적에서 파 버린다는 말을
실제로 내가 듣게 될 줄이야...

"예~ 좋습니다. 파든 말든 맘대로 하세요."

"너 말이 좀 심한 것 같다."

"제가 지금 심한 것 같습니까?
진짜 심한 게 뭔지 보여드려요?
지금 엄청 참으면서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아버지한테 인생 바친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염치도, 양심도 없습니까?"

"너희 엄마가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예전이랑 다르다. 정상이 아닐 때가 있어.
니가 모르는 것들이 있어."

아버지는 엄마의 잘못들을 말씀하셨는데
모두가 아버지의 환상 속 소설이었다.

"아버지의 말도 안 되는 환상,
하나하나 이 자리에서 다 깨 드려요?
누굴 만나신다고요?
제가 전화 걸어서 다 확인시켜 드릴까요?"

"너도 니 엄마랑 똑같다.
나를 정신병자 취급해서
공개적으로 망신시킬 일 있냐?"

"아버지가 무슨 소설을 쓰시든
그건 아버지 자유니까 맘대로 하세요.

저는 아버지의 인지를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태도와 인격을 얘기하는 겁니다.

왜 엄마한테 막 대하십니까.
아버지가 제일 사랑하고
소중히 대해줘야 할 분이 엄마입니다."

"너도 엄마도 나 때문에 고생하는 거 안다.
그러니 고생 그만하고 다 가라!
다 필요 없으니 엄마 모시고 당장 가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근데, 제가 왜 못 가는지 아세요?"

아... 이 말은 안 했어야 했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는데
아버지를 그냥 놔두고 가고 싶다고 하다니...

아버지는 무심하게 답하셨다.

"니 엄마가 불쌍해서 그러겄제~"

"그걸 아는 분이 행동을 이렇게 하십니까?
엄마가 식사도 못하시고 잠도 못 주무시고
매일 밤 울면서 보내는 건 알고 계세요?

아버지가 아무리 속을 썩이고 힘들게 해도
오직 아버지 회복만 걱정하는 게 엄마예요.
엄마는 아버지한테 인생을 걸었다고요!"

그 후로도 아버지와 언쟁이 계속됐다.
하지만 내가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뇌를 다친 분께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내 말이 아버지께 와닿기는 할까?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가서는
될 일도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태도를 바꿔 아버지께 간곡히 부탁했다.

"아버지,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엄마한테 병원 밖으로 나가자는
고집만 부리지 말아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엄마도 아버지의 요구 다 들어드릴 수 있지만
그건 엄마가 들어드릴 수 없는 요구입니다.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하시고
안 들어준다고 화 내시는 행동,
그것만은 안 하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걱정이 돼서 집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아침부터 병원으로 달려왔습니다.
회사에 가도 일이 손에 잡히겠습니까?

저는 아버지의 인격을 믿습니다.
뇌가 다쳤어도 아버지의 인격은
변하지 않으셨을 거라 믿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난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간곡히 부탁드렸다.

아버지도 화를 가라앉히고
조금은 안정이 되신 것 같았다.

"알았다.
내가 왜 엄마를 힘들게 하겠냐.
누구보다도 엄마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나다."

다행이었다.
일단 사태가 이렇게 봉합되어서...
부자지간이 끝장나지 않아서...
아버지가 약속해 주셔서...

"엄마께도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부분
알아듣게 잘 말씀드릴게요.
아버지 자존감 지켜달라고.
아버지도 엄마 자존감 지켜주세요.
저, 아버지 믿고 가겠습니다."

아버지에게 다시 한번 다짐을 받고
그렇게 병원을 나섰다.
만감이 교차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난 아마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다 내뱉고 나니 후련하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지신 아버지께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제대로 찍힌
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
아버지는 어디까지 받아들이셨고
어떤 기억의 조합이 남게 될까...

쉬울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너무 상투적이라 별 감흥 없는 이 문장밖에는

의지할 무엇도, 희망도 없었다.
시간의 힘을 믿는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잘 해낼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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