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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투고를 시작했다

멀고도 험한 기획출판의 길

by 설작가

투고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인터넷엔 출판사 투고 리스트가 떠돌기도 했고

'좋아요' '댓글' '구독'을 누르면 엄선한

투고 리스트를 따로 보내주겠다는 글도 보였다.

그 리스트를 바탕으로 100~200여 곳에

무차별적으로 난사해서 하나라도 걸리면 성공이란다.

그것도 하늘의 별 따기라고...


출판사에서 먼저 출간 제안이 들어와

우아한(?) 방식으로 기획 출판을 했던 나는

출판계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컴퓨터 앞에 앉아 배부른 생각이나 하는 중이었다.


나는 바로 될 것 같은데~

괜히 여러 곳에 보냈다가

다들 계약하자고 하면 어쩌지?

투고해서 잘 봐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다른 데랑 계약했다고 거절하는 건 양아치 아닌가?

내가 진짜 원하는 출판사에만 보내는 게 좋겠어!


내가 내려는 책이 에세이다 보니

내가 재밌게 읽었던, 좋은 에세이를 냈던

출판사 몇 곳에만 투고했다.

그러고도 중복으로 회신받으면 어쩌나 걱정 시작~

(대체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걸까...)



검토 후 다시 회신을 주겠다는 답장들이 왔고,

한참이 지나 완곡한 거절 메일을 받았다.

이제 슬슬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뭐에 단단히 씌었구나.

나는 유명인도, 인플루언서도 아니었고

의사도, 의료 전문가도 아니었다.

한낱 일반인의 간병 스토리에

선뜻 출판을 결정할 자선 사업가는 없었다.

경제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늘 그랬듯 출판 업계 사정은 좋지 않고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독서량은

1994년 첫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고

성인의 종이책 구매량은 연간 '1권'에 불과했다.

연간 1권!!!

이게 말이 돼? 연간 1권이라니...


1년에 꼴랑 책 1권을 사 보는 판인데

사람들은 어떤 책에 지갑을 열까?

'한강'처럼 노벨문학상 정도는 받아야...

'유시민' 정도 글빨과 팬층은 확보돼야...

책장에 꽂았을 때 폼이 좀 나야...

누가 나 같은 사람이 쓴 책에 지갑을 열까?

누가 나 같은 사람과 출판 계약을 할까?


그간의 감상적인 생각,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는

오만함과 자신감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차갑고 냉정한 현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내 글이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겠구나.

결국... 무차별 난사가 답이란 말인가?

사람들이 말하는 데엔 이유가 있을 거라는

뒤늦은 인정과 함께 나는 출판사 리스트를 뒤적였다.



출판사 리스트에 있는 메일 주소를

수신자 목록에 붙여 넣기 하다 잠시 멈칫했다.

아무리 궁한 자의 무차별 난사라지만

최소한의 성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시간과 발품이 좀 들겠지만

어떤 책을 낸 출판사인지 정도는 미리 알아보고

선별해서 보내는 게 예의 아닐까?


리스트에 있는 출판사를 하나씩 검색해 보니

선별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번역서나 전문서적만 내는 출판사,

작가 자신의 책만 내는 1인 출판사,

경제서적, 종교서적만 내는 출판사,

심지어 최근 몇 년간 출간한 적이 없는

문을 닫은 출판사까지 수두룩했다.

큰 무례를 범할 뻔했구나...


나는 내 책의 내용과 결이 맞는,

인기 서적을 출판했던 출판사를 선별해 투고했다.

20곳 정도 보내니 시건방이 또 시작됐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약 50여 곳을 보낸 후 또 설레발이...

'이거 여러 곳에서 제안이 오면 어떡하지?'


다시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을 확인했고

출판사에서 온 메일을 복권 긁듯 클릭했다.

하지만 모두 완곡한 거절 메일이었다.


감사하고 너무 좋은 글 잘 읽었지만...

출판사 사정이 안 좋다,

저희와 출간 방향이 맞지 않다...

그 출간 방향이 도대체 뭐길래...

나만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가...


이제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50여 곳에 더 투고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하지만 한 출판사의 솔직하고 정성스러운

회신 메일에, 그중 한 문장에 눈길이 갔다.


"인플루언서(팔로워 2만 명 이상),

네이버 카페(카페 회원 3만 명 이상),

기존 베스트셀러 작가

위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기획출판이 쉽지 않습니다."


SNS 자주 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봤던 내가,

나는 SNS도 안 하고 뭘 했을까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나마 하나 있는 게 네이버 포스트였는데

이제 포스트는 폐쇄된다고 하고...

아무래도 기획출판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적힌 제안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반기획출판을 제안해 드렸습니다.

진행을 원하실 경우, 언제든 연락 부탁드립니다."


조심스럽게, 연락 한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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