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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Mar 15. 2018

10. café con leche

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머물고 있는 숙소 앞엔 커피 겸 빵을 파는 가게가 몇 군데 있다. 카페라고 하기엔 빵의 종류가 상당하고 빵집이라고 하기엔 커피의 종류 또한 상당해서 카페라고 하기에도 빵집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이런 공간이 사실 집 주변뿐 아니라 도처에 아주 많다. 비록 카페인에 약해서 커피를 잘 마시진 못하지만 빵도 좋아하고 커피향도 좋아하는 나에겐 어쩐지 그냥 지나치기엔 참으로 아쉬운 곳들. 이곳에서 느낀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놓을 생각이었으므로 하루 중 몇 시간은 조용하게 지낼 필요가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선 내게 딱 필요했던 공간이다.  


관광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상점의 직원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된다. 영어로 주문하는 것 자체가 어쩐지 실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authentic 한 곳들이기 때문이다. 2살 아기가 옹알이 하듯 내뱉는 스페인어지만 그래도 그것이 일종의 존중의 의미라고 생각해서 주문은 괜히 스페인어로 시도해본다. 더듬거려 바보 같아 보일지언정 스페인어를 배울 때 알게 된 ‘café con leche’ 라는 단어를 써볼 수 있게 되어 한 편으론 재미나다. 


그렇게 우유를 넣은 커피 한 잔과 그 중 제일 맛있어 보이는 빵 하나를 주문하고 빈 의자에 앉아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어쩐지 내가 이곳에 잠시 머물다 떠날 사람이 아닌 계속해서 여기 살고 있던 사람처럼 느껴진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혹은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들에 매진할 수 있는 순간을 갖게 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조용히 커피 한 잔 하며 글을 쓸 수 있는 이 시간이 참으로 감사하다.  


사실 하고자 한다면 한국에서도 이런 시간을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다. 나의 경우 매일 직장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원한다면 충분히 집 근처 카페에 앉아 사색의 잠길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쩐지 카페에서 쓰는 그 몇 천원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어쩌면 구질구질해 보일 수 있겠지만 내게 있어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커피 한 잔 사주는 것이 어려운 그런 일이다. 아무도 내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에 불만을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가끔은 그런 시간을 좀 갖고 기분 전환을 하라고 말해주기도 하지만, 애초에 누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서 안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그런 말로 내 태도의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이것은 그저 내가 갖고 있는 강박의 일종이다. 가계에 도움이 되는 경제 활동에 임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날 위해 무언가를 사고 돈을 쓴다는 것은 내겐 어쩐지 어려운 일이다. 그깟 커피 한 잔 하면서 남편 잘 만나 편하게 살고 있다는 주변의 시선이 있을까 걱정될 때가 있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그냥 내가 이상한 사람일수도 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문제는 내 안에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 스스로가 이런 류의 소비를 한다는 것에 전혀 우호적이지 않다. 경제적 독립만이 진정한 독립이라고 생각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나였다. 수능이 끝난 후 4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1년 간 재수할 비용을 만들었고, 대학에 다닐 때도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용돈을 썼다. 연수를 떠나고 싶은데 부모님께 손을 내밀기 싫어 우선 취업을 한 후 필요한 만큼의 돈을 모아 그 돈으로 영어 공부를 하러 갔고, 도착한 뉴질랜드에서도 하루에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원에 다녔다. 스스로 돈을 벌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피곤한 일이지만 내가 내 삶을 완성해 가는 중요한 방법이기도 했다. 아주 차갑게 말해 내 돈으로 내가 하는 거니까 간섭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 같은 것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종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성인으로 접어드는 길목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생활 방식이 이러했으니 출산을 계기로 일을 관두고 난 후부턴 돈을 쓰는 모든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남편이 또 난색을 표하겠지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돈은 내 돈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해를 막기 위해 먼저 한 마디 한다면 남편은 내게 한 번도 ‘생활비를 좀 아껴야 될 것 같은데...’ 류의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이미 말했지만 누가 뭐라고 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이런 상황이기에 취업에 집착했던 것이다. 어떤 직업을 통해 얼마를 벌게 되든 그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날 위한 소비를 할 때 ‘내가 번 돈을 내가 쓰겠다는데 무슨 상관?’ 이란 마음으로 지갑을 열며 이 한도 끝도 없는 자격지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남편이 일하는 동안 나는 집에서 열심히 아기를 돌보고 있으니 사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에 내 지분이 있는 것이란 생각도 해보려고도 했지만 아무래도 내게 통하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그 돈으로 우리 딸의 옷과 장난감을 사고 함께 먹을 일용할 양식을 사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돈으로 이미 갖고 있지만 어쩐지 또 사고 싶은 캐시미어 가디건을 사거나 카라멜 마끼아또를 사먹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어쩐지 반칙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세상을 참 어렵게 살고 있다는 것을.  


전업 주부로서의 삶을 힘들어 했던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단순히 아기를 돌보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는 의지를 해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상태인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나름대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능력을 표출할 수 없는 상황이 속상했다.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재취업 문제는 ‘내가 번 돈으로 내가 마음대로 쇼핑하며 살 거야’ 라는 철 없는 생각을 하는 나 같은 여성들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길어진 수명으로 인해 소득활동 없이 살아야 하는 기간이 길어진 우리 모두에게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체계적으로 접근되어 적절한 대책이 세워져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내가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소득 활동에 열심히 임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나기 전에, 나도 그 혜택의 수혜자가 되어 내 능력을 한 번 더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라본다.  


바르셀로나의 어느 한 골목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니 세상 정말 힘들게 살고 있는 나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인생이란 것이 원래 힘들고 복잡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이렇게 뜬금없는 순간에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 나름대로 정리가 되니 기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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