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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Mar 15. 2018

22. 거창하지 않은 배려

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나는 신호등의 파란불이 깜빡이면 본능적으로 달리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이런 행동 패턴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좀 잦아들기 시작했지만 아이 없이 다닐 경우엔 여전히 파란불이 깜빡일 때 나도 모르게 달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도 이 버릇은 여전히 이어졌다. 길을 건너는 도중 파란불이 깜빡이게 되면 괜히 마음이 급해져 속도를 내어 달린 후 건너편에 폴짝! 도착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 이곳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나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파란불이 깜빡여도 뛰지 않는다. 우선 보행자 신호가 길어서, 깜빡인다 해도 아직 건널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뛸 필요가 없기도 하지만, 만에 하나 중간에 신호가 바뀐다고 해도 그 사람이 다 건널 때까지 차들이 넋을 놓고 기다려 주기 때문에 보행자가 다급하게 길을 건널 이유가 없다. 나아가 보행자가 없어도 파란불이 빨간불로 바뀌기 전까진 대부분의 차가 주행을 시도하지 않는다.  

두 번째 상황에서 나는 솔직히 좀 놀랐다. 신호가 바뀌던 말던 길을 건너던 사람이 끝까지 다 건널 때까지 여유로운 모습으로 기다려주는 운전자들도 놀라웠고,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다급한 기색 없이 건너던 길을 마저 건너는 보행자들도 놀라웠다. 우리 나라에선 빨간불로 바뀌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보행자가 없다는 이유로 운전자들이 그 신호를 무시하고 주행을 한다거나, 심지어 아직 건너고 있는 보행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빨간불로 바뀌자 마자 조금씩 앞으로 나오는 운전자들을 볼 수 있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런 모습에 익숙해진 우리라서 ‘신호가 바뀌기 전에 얼른 건너야지!’ 라는 생각으로 바삐 길을 건넜던 것이고 말이다. 워낙 보편적인 상황이었기에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심각하게 해보지 않았었지만 너무나도 다른 운전자들을 경험하고 있으려니 어쩔 수 없이 또 생각이란 것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이곳의 운전자에게도 물어보지 않았고 한국의 운전자들에게도 물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차이의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할 순 없지만, 두 개의 사회를 경험해 본 결과 이것은 ‘타인’ 더 구체적으로는 ‘약자’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느낀 그들의 배려심은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가 얼마나 성숙한 사회인지를 보여주는 척도 같은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유모차를 갖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나마 전철은 좀 나은 편이다. 아주 냉정하게 말한다면 시내 버스는 꿈도 꿀 수가 없다. 나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지만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땐 사회적 약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약자가 된 상태에서 느끼는 한국 사회는 참으로 적응하기 어렵고 냉정하다. 누군가는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줄 텐데 왜 말은 하지 않고 불편함을 호소하느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사실 난 이런 류의 배려를 도움이란 개념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이 정도의 배려는 도움이란 거창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혹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베풀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혼자 길을 건널 때 신호등이 깜빡 거리면 열심히 달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기를 데리고 있다거나 짐이 많다거나 그 외 다른 이유들로 보행이 불편할 경우엔 신호등이 깜빡여도 내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기가 어렵다. 이런 경우 운전자들의 배려가 필요한데 한국에서 내가 느낀 것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보행자가 오히려 운전자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빨간불로 바뀌기 전에 서둘러 건너려고 노력하다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것을 서로가 인지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행자는 운전자가 날 위해 멈추어 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으로 달리고, 운전자는 신호가 바뀌어서 가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마음으로 주행을 시도하는 것 같다.  

길을 건너던 사람이 마저 건널 수 있도록 잠시 멈추어 주는 아량을 베풀지 못하는 운전자들에게도 문제가 있고, 그 정도의 아량도 베풀지 못할 것이라고 넘겨 짚고 위험하게 움직이는 보행자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배려를 할 줄도 배려를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발전과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끊임없이 달려온 결과 우린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누리게 된 민족이 되었지만 그로 인해 잃은 것도 참 많은 민족이 되었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인 것을 알기에 이 사실이 조금 더 아쉬운 건지도 모르겠다.     


스페인에서 머무는 동안 만난 모든 사람들이 멋진 것은 아니지만, 당연한 일이라는 듯 상대를 먼저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또 스페인 인 것 같다. 예의라는 격식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매너있는 행동을 할 뿐인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멋짐이란 것이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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