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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Mar 15. 2018

21. 최소한의 보호

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과잉보호 차원까지 갈 것도 없다. 최소한의 보호이다. 단열재에 온돌에 우리는 집도 과잉으로 보호한다. 하지만 이곳은 온돌이나 단열재는 커녕 그냥 차가운 타일 바닥에 벽지도 없이 페인트를 바른, 말 그대로 날 것 그대로의 벽이 공간을 나누고 있다. 한 여름에도 집에 가만히 있으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기후가 다르고, 가옥에 대한 가치나 기준 혹은 건축 양식 등이 달라 이런 차이점이 있는 것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이곳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다른 것이나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려 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가옥의 형태도 이런 식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따뜻하게 할 줄 몰라서 이런 형태의 가옥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어린 아이를 돌보는 방법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오늘 학원 사람들과 길을 걷다가 보게 된 한 가족을 보고 난 뒤에 이런 생각이 더 확실해졌다. 옷이 더러워 질까, 행여 병균에 노출되진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흙 바닥에서 뒹굴기를 원하는 아이를 제지하려 하지 않고, 감기에 걸릴 것을 염려하여 빗속에서 뛰어 놀고 싶어하는 아이의 손을 내 쪽으로 굳이 잡아 끌지 않는다. 걱정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느끼는 만족감과 원하는 무언가를 쟁취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을 맛보게 하는 것이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보호는 하면 할수록 그 정도가 과해진다. 부모도 그 끝이 어딘지 모르고 자녀 또한 그 끝이 어딘지 모른다. 급기야 자녀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지 않는 단계에 이를 수도 있다. 하려고 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하지 못하게 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추울 때 보일러를 틀어 집안 온도를 높이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의 체온을 올려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추울 경우 그 때 보일러의 온도를 높여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어쩌면 부모란 추운 날 보일러 같은 존재 일지도 모른다. 스웨터도 입어보고 양말도 신어보고 수면 바지도 하나 더 입어보며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해도 그 노력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추위가 있다. 보일러는 그런 추위를 견딜 수 있게 하는 최후의 수단이 아닐는지. 추운 기운이 느껴질 때마다 보일러를 틀면 난방비도 많이 나올 뿐 아니라 감기에도 더 자주 걸린다. 과잉보호의 폐단과 비슷하다. 


이곳 사람들의 방식이 모두 옳은 것도 아니고 우리의 방식이 모두 그른 것도 아니다. 서로 방식이 다를 뿐 선의에서 시작된 행동이란 것은 모두 같다. 다만, 내가 갖고 있는 것만이 옳은 것이라는 오만함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그들이 생각지 못한 대단함을 우리에게 발견하고 그것을 배우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도 배울 것은 배워보려 노력하는 것이 새로운 세상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본 부모의 자세는 배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자녀의 의지를 최대한 존중하려는 그들의 자세는 멋져 보였다. 이렇게 또 우연한 기회에 나는 삶의 사소한 지혜를 하나 얻었다. 


나였다면 물 속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한 아이에게 이런 방법으로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를 두 손으로 안고 상체만 살짝 기울이는 정도로 물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주 잠깐 보여주고 말았을 것 같다. 발이라도 잘못 디뎌 물 속으로 떨어질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가족의 모습은 달랐다. 아이가 물 속을 관찰하고 싶을 때까지 관찰할 수 있도록 편한 자세를 취하게 한 뒤 혹시라도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도록 아이의 옷가지를 잡고 있는 정도로 부모의 역할을 한정했다. 물 속을 들여다 보며 재잘거리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내 발걸음이 그 곳에서 아주 멀어질 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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