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귀국을 5일 앞둔 오늘 바르셀로나엔 비가 내린다. 바르셀로나에 있던 날들 중 처음으로 비가 내리는 날이다. 궂은 날씨가 속상하다기 보단 덕분에 조용한 곳에서 그간의 일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갑자기 집 안에서 잘 터지던 와이파이가 말썽이다. 주인도 없는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노트북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비가 오지만 이제와 우산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인 것 같아 청승맞게 외투를 망토처럼 뒤집어 쓰고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을만한 카페를 찾는데, 순간 너무 추워서 ‘집 나오면 고생이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곧 ‘이것도 다 추억이다’ 라고 생각을 고쳐 먹고 가던 길을 계속 가보았다. 다행히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일부러라도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예쁜 카페를 찾는 행운을 맞이했다.
스페인 여행을 결정한 후 처음으로 따뜻한 음식을 먹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늘의 스프가 감자 스프라는 얘기에 다른 것은 보지도 않고 그 메뉴를 시켰다. 그게 음식이든, 옷이든, 사람이든, 그것들로부터 나오는 따뜻한 기운은 언제 느껴도 참으로 좋은 느낌인 것 같다.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시 다짐해보는 순간이다.
혹시나 운이 없을 경우 시끄러운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 가게 될 것을 염려해 아이팟을 챙겨 나왔는데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여기에 정말 좋아하는 음악들이 나오고 있다. 비가 내리고 집은 춥고 인터넷은 연결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외출치곤 그 외출로 인해 얻게 되는 것이 너무도 많은 상황이다. 관광지를 찾아 바쁘게 움직이는 여행도 나름의 의미가 있고 사람에 따라 당연히 즐거울 수 있겠지만, 시간에 쫓기지 않도록 대충 계획을 세운 여행을 해볼 필요가 있는 이유는 이런 것인 것 같다. 생각지도 못한 사소한 기쁨을 맞이 할 수 있다는 것.
웅장하다거나 압도적인 기쁨은 아니지만,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작고 소박한 기쁨을 느낄 수가 있다. 화려하고 멋진 기억들도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어쩐지 스치듯 지나간 짧은 순간의 소소한 기쁨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런 기억들이 모여 내 인생이 보다 풍요로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카페에서 그렇게 오래 기억될 소박한 기쁨이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