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매우 쾌활한 사람이었다. 유쾌하고 즐거운 사람이었다. 친구들과 지낼 때도 그렇고, 즐거움을 쫓는 사람처럼 늘 그렇게 긍정적이었다. 긍정의 아이콘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런 내가 더는 좋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늘 우울했다.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늘 기운이 없었고, 늘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아이가 놀이치료를 받기 시작한 초기에는 아이의 행동에도 조금 변화가 생기고, 아이를 이해하는 폭이 커지며 아이가 전반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당히 좋아졌다. 일단 유치원에서의 피드백이 좋아졌다. 아이의 학습 태도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나의 내면 한 구석에는 기대하는 마음도 생겼던 것 같다. '아이가 좋아져 가고 있으니, 나의 이 우울감도 점차 사라지겠지?'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우울증이 더 깊어져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나는 어깨가 너무 아파서 밤을 꼴딱 새웠다. 고통으로 한숨도 못 자고 퀭한 얼굴로 남편에게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어깨가 당장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아니,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나는 20대부터 '힘줄염'이라는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문제는 면역력이 떨어지면 염증이 심해지는데, 그동안 잠잠하거나 약하게 오던 통증이 극심한 강도로 왔던 것이다.
그럴 때는 정형외과에 가서 염증약을 타서 먹으면 되었다. 그런데 너무 염증이 심해서 그 날은 어깨에 주사를 맞았다. 나는 이 스테로이드 주사를 벌써부터 맞는 것이 두려웠다.(이미 세번째로 맞는 주사였다) 나중에 더 나이를 먹으면 주사 조차도 듣지 않게 되면 그 고통을 무엇으로 참는다는 말인가?
그런데 내가 이 문제로 종종 내원한 이력을 가만히 보던 의사 선생님께서 류머티즘 관절염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전에 검사를 했는데 수치가 4.5가 나왔다고 말했다.(어차피 정상이 나올 텐데 검사비용이 아까웠다.)
그게 언제냐고 묻기에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보니 10년 정도 전이더라. 그렇게 대답하니 시간이 꽤 지났고, 혹시 모르니 한 번 검사나 해보자고 하셨다.난 여전히 검사비가 아깝다 생각했지만 하는 수 없이 피를 뽑았다
다음에 결과를 들으러 갈 때도 나는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이 전의 결과가 낮게 나왔기 때문에 아직 30대 중반인 나에게 나쁜 진단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단단히 믿고 있었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것만큼 아픈 것은 없다. 정상 범위는 14 이하였으며, 나의 수치는 24.5였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막막했다. 마음이 잘게 잘게 쪼개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나는 그 날 이후로 침대에만 누워 지냈다. 본격적인 우울증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