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분노가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 나는 쉽게 화가 났고, 참을 수 없었고, 분노는 작은 불씨와도 같았다. 작게 난 불은 언제나 화마가 되어, 나 자신을 비롯한 내 주변 모두를 뒤덮었다. 나는 나로 인해 불편해지는 주변이 신경 쓰였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의 작은 실수에도 나는 참을 수 없었고, 남편의 무심한 행동에도 화가 났으며, 지나가는 행인의 불편한 행동까지도 분노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세상 모든 불의와 맞서 싸워야 할 것 같은 사명감도 가끔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 없으며, 나 하나 제대로 살기도 버거운데, 무슨 옳은 소리를 하나 싶었다.
특히나 아이들에게 잔소리나 꾸지람을 하는 나를 돌아볼 때면 나는 화의 단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화를 내면서도 이건 마치 나의 아버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아버지보다는 낫다는 바보 같은 위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를 이해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볼 때마다 자괴감이 수도 없이 밀려왔다. 이것은 내 부모 잘못인가, 내 잘못인가, 아이의 잘못인가. 나는 부모 자격이 없는 건가. 아이와 전쟁 같은 시간들을 보내며 나는 점차 날카로워져 갔다.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럴수록 제대로 보살핌 받지 못했던 나를 느끼고는 했다. 조금 더 사랑받았다면 내가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원망과 미움, 분노가 내 안에 솟아올랐다. 나는 내 안에 검게 고인 웅덩이를 찾았다. 검게 썩은 그 물 웅덩이는 내가 아무리 퍼내려고 해도 끝없이 샘솟아 그 수위를 지키고 있었다.저주스럽기까지 했다.
조금 더 뒤를 보니 어린 내가 울고 있었다. 나는 슬픈 얼굴로 좌절한 표정을 하고는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상처투성이에 멍자국이 가득한 몰골을 하고 웅크린 채로 울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흘리고 있는 눈물은 검은 물이 되어 웅덩이를 만들었고, 썩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덮어두었을 뿐이었다.
덮였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덮었다. 하지만 지워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것은 내 안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검은 샘이 되어, 점차로 나를 잠식할 것이다! 나는 그것의 존재가 두려웠다. 내가 힘들고 지치고 무력해질 때마다 나는 그 존재를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두려웠다.
"나를 봐줘. 내가 여기 있어. 내가 여기 이렇게.. 아파하잖아."
'하지만 이미 다 지난 과거인 걸?'
"하지만 너는 내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아."
'아니 나는 알고 있어. 하지만 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니, 넌 이제 내가 싫은 거야. 부끄럽고 귀찮은 거야. 창피한 거야. 나란 존재가 지워지길 바라는 거야. 삭제되길 바라는 거야. 하지만 난 없어지지 않아! 영원히! 영원히!"
아팠다. 나의 어린 시절이 아파하는 게 아팠다. 피눈물을 흘리는 어린 나의 자화상이 아팠다. 무엇보다도 그 말이 진실이라서 아팠다. 그냥 묻어두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나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고귀했던 사람처럼, 나는 마치 귀애받은 사람처럼, 나는 마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처럼. 그렇게 맑고만 싶었다.
그것은 연기로 쌓아 올린 허상이었던가. 내가 아닌 나는 나를 아프게, 아프게 만들었다. 더는 그게 내가 아니라고, 내가 말한다. 진짜 내가 저 안에서 아파하고 있다고, 내가 말한다. 어찌해야 하는가.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나는 사랑을 몰라
아이에게 별 것도 아닌 일로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던 날, 분노를 터트리는 나를 보며 나는 질문했다. 왜 세상은 내게 평온하지 않는가. 왜 타인은 나를 착취하는가. 왜 내 아이들마저 내게 요구하기만 하는가. 나는 왜 끊임없이 소진되고 있고, 왜 나는 그들을 견딜 수 없는가.
한 편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평온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내 상황만 유독 힘들고 괴로운가? 아니면 나만 유독 힘들게 느끼는가. 도대체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고, 나는 무엇으로부터 그렇게 분노를 느끼느냔 말이다!
그때 나는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내 안에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허망한 한 숨이 탄식과 함께 눈물을 쏟아낸다.
"이해받지 못했어."
그래, 나는 한 번도 이해받지 못했어.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 무턱대고 이해를 주는 게 아이들의 요구로 느껴졌던 거야.
"허용받지 못했어."
나는 언제나 통제와 불통 속에 살았어. 한 번도 그래도 된다는 '가능성'에 놓인 적이 없었어. 한 번도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그래서 그 말이 안 나와. 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 나오지 않아. 특히 다급한 상황이나 문제 상황에서는 더욱 내몰려서. 나는 코너에 몰린 어린 시절의 내가 되어 나의 모습을 한 내 아이를 봐. 그리고 어린 나에게 다그치지. 그렇게 하지 않았음 그렇게 혼나지 않았을 텐데, 도대체 왜 그랬어!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졌어! 라며 나를 자책했어.
"사랑받지 못했어."
사랑받지 못했어. 우린 그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연기를 했을 뿐. 사랑으로 만들어진 가족이 아니었어. 그러니 나는 사랑받았다는 기억이 없어. 내몰리고, 저주받고, 체벌당하고, 학대당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에 가득해서, 그래서 나는 사랑을 몰라. 그런 내게 사랑을 요구하잖아. 내겐 사랑이 부족한데. 사랑을 달래. 나도 부족한 사랑을 어떻게 나눠줘? 별로 채우지도 못한 그릇에 고인 사랑을 다 퍼주고 나니까... 나는 봐.. 이렇게 아프잖아...
'미안해. 미안해, 내 마음아.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진작에 알아주지 못해서.. 네가 그렇게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 척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는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다. 내가 너무 불쌍해서. 내가 너무 마음 아파서. 그렇게 방치된 채, 나에게조차 모른 척 숨어있어야만 해서.. 그게 너무 미안해서....
당신을 원망해
나를 학대했던 아버지. 당신을 원망해. 이 분노의 모든 방향은 나도 아니고, 우리 가족도 아니고, 사회 부조리도 아니야. 바로 당신! 나를 한 번도 이해하지 못하고, 내 목소리를 한 번도 제대로 들어준 적 없고, 묵살하고, 무시하고, 폭언과 폭력을 일삼았던 아버지! 당신이었어!
나는 그 어린 날의 나로 돌아갔다. 나는 그때의 나로 빙의해서 그 날의 아픔을 호소했다. 까무러치도록 아프고도 힘들게 울고 불며 원망과 분노를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그것은 한 번의 핵폭발처럼 내 안에서 빵 터지듯이 일어났고, 내 안의 어린아이가 왜 그렇게 아팠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그리고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는지 알아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가족 간에 받은 고통은 잠시 잠깐 받은 고통이 아니기에 잠시 잠깐 폭발시킨다고 하여 전부 해소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따금 생각날 때마다, 억울함이나 분노가 끓어오를 때마다 나 혼자 그렇게 내 앞에 없는 아버지를 향해 욕과 미움과 분노와 응징을 했다. 아무렴 어때. 내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면전에서 당했지만, 나는 면전에다 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 혼자, 내가 당한 부조리에 대해 항의한다. 어린 내가 나서서 대항하지 못했던, 젊은 날의 아빠에게.
힐링; 안개 숲을 걸어 나오다
조금씩 조금씩 미움이 걷혀 갔다. 미움과 분노가 걷히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세상이 이렇게 다채로운 색을 띠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뿌옇게만 보이던 세상이 맑게 개인 맑은 하늘의 봄날처럼, 맑고 밝게만 보였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는 교육받은 대로 나에게 계속 '나는 나를 사랑해.' '나는 소중해.'라고 말해주고 있었지만, 그 날 만큼은 그 말이 더욱 가슴에 콕 와 박혔다.
'그동안은 진심이 아니었구나.'
이제야.. 이제서야,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 진실로 느껴지다니. 어제까지는 모르고오늘에야 비로소!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나는 나의 소중함을 발견했다.
나는 이 모든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내게 미안해서, 상대에게 화가 나서, 내가 나를 지켜주지 못해서, 또 내가 소중하다는 걸 깨달아서. 나는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게 되어서 말이다. 나는 그 모든 순간에 뜨겁게 울었다.
내 눈물의 모든 끝은 강한 다짐이 되어 나를 뜨겁게 만들었다. 다시는 나를 그렇게 방치하지 않겠다는,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아프게 두지 않겠다는.
나는 나를 책임지는 나 자신의 주인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길 것이며, 나를 함부로 대하는 모든 것에 대해 지혜롭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음을 강하게 느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나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나를 믿고, 나를 의지하고, 노력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이후로 도전이 시작되었다. 새 삶이, 두 번째 삶이 시작된 것이다. 무기력에서 벗어나 운동을 시작했고, 아무것도 아닌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적극적인 내가 되어갔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여 시도하지 않았던 글쓰기도 도전했고, 블로그,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점점,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갔다.
그때 나는 갑자기, 내 안의 검은 웅덩이를 떠올렸다. 그것은 내게서 악취가 나게 만들던 존재다. 내가 아무리 감추고 숨기려고 해도 나의 병든 마음은 자꾸만 추악한 속내를 드러내게 만들곤 하였다. 그래서 타인을 공격하게 만들던 내 마음의 미움과 분노와 악의 덩어리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맑은 샘물이 생겨난 것이다. 나는 그것이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사랑임을 깨달았다.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했어'라는 피해의식에 절어있던 아팠던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사랑의 샘물이 퐁퐁 솟아나고 있었다.
놀랍게도,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는 게 더는 어렵지 않게 되었다. 당연히 나누게 되었다. 부족한 사랑은 자녀에게도 나눌 수 없어 고통스럽게 메말라 갔지만, 차고 넘치게 샘솟는 사랑은 이제 주어도 주어도 부족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깨달았다. 감사했다.
매일 자신의 과거를 파헤치며 살 필요는 없다. 어느 날 갑자기 그것이 나를 괴롭히고, 아무리 떨치려 해도 떨쳐지지 않을 때, 그것이 나를 찾는 것이다. 이제 자기를 구해달라고.
진정한 행복은 자기 사랑에서 온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아픔은 스스로 치유해야 한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아도 좋다. 하지만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듯, 누가 대신 내 아픔을 없애줄 수 없다.
이후로 나는 꿈에서 소녀를 만났다. 예쁜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말간 얼굴을 하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안녕 인사를 하고 뒤돌아 뛰어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멀리멀리 작아져 갔다. 나는 울 것만 같았지만 참았다. 이제는 행복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