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에게 계속해서 폭력 문제가 드러났다. 착하고 예쁜 아이인데,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우리 강아지는 안 그래요." 랑 똑같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어요."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매우 의도적인 행위들이었고, 매우 공격적이었으며, 반복적이었다. 개선의 필요가 높았다.
그것은 유치원 때부터였다. 심지어 선생님에게까지 공격을 했다. 유치원에서 비상 회의가 열렸다. 원장 선생님은 친구에 대해 공격적인 것도 문제지만, 선생님까지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셨다. 곧 아이에 대한 교육을 거부할 것 같았다.
졸업까지 반년 남은 시점에 이제와 어디로든 옮기면 적응이나 제대로 할까. 더는 안 그러리란 보장도 없다. 상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 내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 나는 절망감을 느꼈다. '왜 너마저...?'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내가 너무 형에게만 신경 쓰느라, 둘째는 방치한 걸까?'
나는 선생님께 사죄하며 사정했다. 기회를 달라고. 아이가 분명 문제를 겪고 있는 것 같으니, 해결해보려는 노력을 해보자고. 지금 기회를 주지 않고 내보낸다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될 거라고.
역시 교육자들이라서, 더 큰 문제가 될 거라는 것에 모두 공감하셨다. 아이가 문제가 생긴 장소에서 극복하지 못하고 덮거나 피해버리면, 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힘을 기르지 못할 것이며, 진짜 원인 문제를 찾아 해결할 수 없게 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심리센터에 방문하여 심리검사 등을 진행하고, 심리치료 교실을 기다렸다. 하지만 빈자리가 쉽게 나지 않았다. 그동안 둘째에게 더욱 관심을 주며 아이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또 폭력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최근 아이가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점, 실제로 많은 부분 달라진 점 등에 착안하여 조금 더 지켜보자 했다. 아이가 그렇게 쉽게 달라질 수 없는 게 당연하고, 욱하는 상황에서 유독 감정 조절을 못하는 것이 문제이며, 그런 상황은 아이가 잘 통제하기 어려운 부분임을 감안해주셨다.
그렇게 두 달여를 기다려 미술심리치료 교실에 자리가 났다. 하지만 바우처를 받을 수 없어서 비싼 교육비를 감당해야 했다. 첫째도 새 학기부터 센터를 다니려면 두 녀석을 보내야 하는데, 바우처가 될 때까지는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구직을 결심했다)
미술심리치료를 시작하고, 아이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아이의 미술활동을 통해 성향을 파악하셨고, 그것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빠와 매우 닮아 있었다.
나에게 둘째는 어려운 아이였다. 무언가 예민한 듯 수더분하고, 날카로운 듯 덜렁대며, 친절한 듯 무신경하고... 등등 참 알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선생님과의 활동 속에서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면서, 내가 참 많이 몰랐구나. 내가 참 많이 몰라줬구나. 답답했겠구나. 싫었겠구나. 힘들었겠구나... 이런 생각들이 스쳤다.
둘째는 무엇보다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소근육 발달 문제다. 그래서 손 사용이 어눌하고, 그래서 미술활동이 어렵다. 완성도도 떨어진다.
그런데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자기의 것이 너무 부족해 보일 터였다. 그럴 때 친구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웃는 것 가지고 둘째는 자기를 비웃는다며 화를 냈다.
자기 자신의 작품에 만족감이 낮으니 자존감도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유치원 생활에서 불만이 깊어졌을 것이다. 그러다가 뭔가 자신을 탁 건드리는 사건이 생기면 그게 누가 되었든 간에 팡 터지고 마는 것이다.
첫째로 다른 부분에서 만족감과 성취도를 올려주고, 이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며, 둘째로 잘 안 되는 부분을 그나마 자신 있는 부분에 있어서 강화 연습을 시켜주기로 했다.
adhd 형제를 둔 아이. 둘째는 형도 아니라서 마냥 양보할 수도 없고, 동생임에도 형보다 낫거나 비슷해서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고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첫째의 수준이 동생과 비슷하니 동생에게는 수준 높은 기대도 없었으며, 발전도 성장도 더디거나 둔화되었다. 첫째가 너무 기죽을까 봐 둘째를 마냥 칭찬할 수도 없었다. 아이러니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부모였다. 심리치료를 통해 개별 맞춤으로 다가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