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미심쩍은 느낌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생각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늘 간단명료하고, 질환에 대한 설명은 없다. 기껏해야
"원래 그래요."
"잘 보셔야죠."
그런 말은 모르는 사람도 해줄 것 같다.
왜 갈 때마다 불쾌할까. 이 미적미적한 기분 때문에 점점 아이의 질환에 대해서 나도 그와 같아져 갔다. 물들어간다. 냉정해지고, 냉소적이고, 무관심한 듯, 사무적으로.. 그렇게 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일이 터지면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나였다. 그래서 좀 더 멀지만 전문의가 있는 의료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진작에 여기로 다닐 것을..
우선 친절했다. 그리고 질환에 대해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애써주셨고, 그렇다고 하여 이게 아무것도 아니하는 식은 아니었다.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 최종 목표가 뭔지, 약 조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그 과정에서 아이와의 면담도 이루어졌다. 아이가 혹여나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아이의 눈높이와 아이의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어주셨다. 감사했다.
의사 가운을 입은, 전문가라는 분이 아이에게 말을 해주니 신뢰도가 높아졌다. 자기 질환에 대해 어수룩하게 알고 있던 부분을 명확히 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편안하게 받아들여주었다.
선생님은 형제관계에도 당부를 주셨다. 아이의 테스트지를 동생이 보지 못하게 할 것. 그로 인해 받은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으니, 어릴 때 모르고 놀리거나 상처 주지 않도록 잘 밀봉해서, 동생이 볼 수 없게 하라고 하셨다. 정말 차원이 다른 디테일이었다.
전문 테스트를 하고, 아이가 ADHD가 맞으며, 특히 어느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알려주셨다. 그럴 때 아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의도적으로 나빠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세포가 아예 없거나 부족하다는 것을 이해시켜주셨다. 아이를 한 단계 더 알아간 기분이었다.
아이를 사랑만으로 키우기는 어렵다. 사랑은 기본이되, 진정한 사랑은 뿌리 깊은 이해다. 자칫 아픈 사랑을 줄 수도 있지만, 이해는 배려를 낳고, 조바심을 줄이고, 관용적이게 도와주며, 슬퍼하지 않게 된다.
아이에 대해서 슬퍼하는 것은 자녀를 키우는 데 있어 1도 도움이 안 된다. 아이를 동정하거나, 아이에게 죄책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어떻게도 부족한 아이라며, 좌절하게 될 수도 있다.
아이는 나에게 축복이고, 기쁨이며, 있는 그대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언제나 적극적으로 알려주어야 한다. 잊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주기적으로 알려주어야 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신경정신과는 그래서 꼭 필요하다. 그저 증세 듣고, 약 지어주는 닥터가 아닌,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전문의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