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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Apr 06. 2023

성인 ADHD와 운전

난폭

(개인의 견해와 경험이므로 일반화의 오류를 일으키지 맙시다.)

운전대를 잡으면 난폭해진다.

뭔지 모르게 급하다. 오직 목적지만 보인다. 빠른 길이 보인다. 빨리 갈 수 있는 방향이 보인다.


'이렇게, 이렇게, 저렇게, 저렇게 가면 될 것 같은데?'


여유가 없다. 밀리는 길을 못 견딘다. 밀리지 않는 길과 방향을 떠올린다. 그쪽마저 갈 수 없으면 답답하고 미칠 것 같다.




운전대를 잡은 나의 잠깐의 심리묘사를 하는 글의 호흡마저 숨 가쁘다. 운전대를 잡은 어느 순간, 나는 돌변한다. 언제부터 그 방아쇠가 당겨졌나 알 수 없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니다. 매번 그런 것도 아니다.


첫 번째 트리거, 지각

ADHD에게 지각은 일상이다. 언제나 시간에 거의 맞춰 출발하니, 늦을 것을 예상하고 약속시간을 잡아도 그 시간을 못 맞추는 건 일상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운전 중에 그 시간을 맞추려고 서두른다. 이건 100% 확률로 발동한다.


두 번째 트리거, 느린 운전자

앞에 너무 느린 운전자가 있으면 발동한다. 세상 여유는 혼자 다 가졌나, 마음이 급하고, 목적지 지향형인 ADHD에게 여유 낙낙한 앞차는 트리거가 된다.


앞차를 앞지르고, 그때부터 질주가 시작된다. 그러다 상대방 운전자가 통화 중인 것을 발견하면 더 화가 난다. '통화하며 운전하다니! 블루투스 등 핸즈프리를 이용하라고!!' 이렇게 생각하며 분노의 운전을 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납득이 갈 때는 안정이 된다. 비상등 등으로 자신의 운전이 느린 것을 어필한다든지(초행이거나 문제상황일 수 있으므로) 손을 들어 어떤 제스처를 표시해 준다든지, 아니면 아이가 타고 있다든지. 나는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을 못 견디는 사람인 듯하다. 그리고 그럴 때 화가 난다.


세 번째 트리거, 무목적과 멍한 상태

이게 참 문제인데, 목적지가 없어도 이게 30~60% 확률로 발동한다. 그러니까 매뉴얼대로 운전하는 것이다. 그때 입력된 매뉴얼이 '여유'매뉴얼이냐, '다급'매뉴얼이냐에 따라 다른 운전양상을 가진다.


그러니까 지각해서 아이를 급히 바래다줬으면 '다급'이 입력된 상태이고, 돌아오는 길도 다급하고 거칠어진다. 그런데 별생각 없고 평화로운 상태이면 그저 평화모드인 것이다.


그런데 또 '멍한 상태'도 문제다. ADHD는 자주 '멍'에 빠지는데, 그때 두 가지 이유로 운전이 난폭해진다. 첫째가 주의력 부족이고, 둘째가 난폭 매뉴얼 발동상태인 것이다. 그러니까 '습관'같은 것이다.


주의력부족은 ADHD의 특징인데, 평소엔 잘 보던 사드미러도 그때는 잘 못 보고 차선 변경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판단 미스에도 영향을 미친다. 분명해서는 안 되는 끼어들기나 유턴 등에 '판단 미스' 나 '판단 오류'로 인한 무리한 운전을 감행한다. 이것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 나는 운전 중에 가급적 각성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나열한 것만 보면 어쩐지 ADHD에게 운전대를 맡기면 안 될 것 같다. 나도 동의한다. 그래서 운전 습관이 중요하다.



해결방안


내 글의 특징이 뭔가? 언제나 방안을 제시한다. 문제제기에서 끝내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고민하고, 해결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늘 고민한다. 나의 해결방안은 이렇다.


1. 지각하지 않고, 지각할 상황도 만들지 않는다.

ADHD에게 지각은 꼬리표와 같은데, 자동으로 되는 지각을 어떻게 하지 않는단 말인가? 방법이 있다. 약속시간을 기점으로 거슬러 플랜 하는 것이다.


12시 약속이면, 심하면 12시, 덜하면 11시 반부터 준비하는 우리. 하지만  약속장소까지 도착하는 시간을 거꾸로 계산해 보는 것이다.

1. 약속장소 이동시간 계산(오차 +5분)
2. 옷 입는 데 걸리는 시간
3. 화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
4. 씻고 준비하는 데 걸리는 시간
5. 총 소요시간 및 최하시간 계산
6. 시작시간 말해주기


우리는 몸속에 시계가 없다. 다분히 즉흥적이고, 모험적이고, 도전적이라서. 그리고 희망적이기까지 하다. 1시간 걸릴 일을 30분 만에 다 처리할 수 있다는 근자감까지 있다. 말도 안 되지만.


그러므로 시간을 거꾸로 계산하고, 최하시간을 계산한다. 이 최하시간 안에 시작하지 않으면 최하 1분 이상 100% 지각할 것이라는 것.


그 최하시간을 기반으로 한 시작시간 말해주기. 이게 중요하다.  나에게 말해주지 않으면 나는 나의 그 플랜을 무시하기 일쑤다. 그러므로 "12시까지 만나려면 최소 10시 반부터는 준비를 시작해야 돼."라고 나에게 소리 내어 말해준다. 약간의 세뇌 같은 거다.


그리고 내가 5분~10분 늦게 시작했거나, 그런 사정이나 상황이 발생했으면 내가 늦을 것도 충분히 예상이 된다. 그러므로 상대에게 미리 전화해서 내가 얼마큼 늦을지 알릴 수 있다. ADHD는 자신의 행동 방향을 예상하기 어려워하는데, 이렇게 나를 예상하고, 상대에게 미리 알리고, 이렇게 관계를 좋게 유지할 수 있게 되며, 나도 서두르지 않게 된다.


2. 운전 세뇌

"여유롭게 하자."

"안전하게 가자."

"나는 여유롭다."

"늦지 않았어."

"저러는 이유가 있겠지."

"나는 친절한 거지 만만한 게 아니야."

" 주변 경관을 좀 보고 즐기자."


괜찮아

무엇인지 모르는 불안감. 늦으면 어쩌지. 또 나쁜 평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뭔지 모르는 각종 불안. 불안한 불안으로 인한 나도 모르게 서둘러지는 마음이 있다. 그 모든 불안과 다급함, 뭔지 모를 그것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주자.


그것이 나를 편안하게 해 주고, 이완시켜 주며, 여유를 준다. 운전에 평화가 온다.



이제 한 아이의 엄마다. 아이가 어려서 잘 모를 때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아이가 알만하니 신경 쓰인다. 아이에게 학습이 될까 봐서. 아이는 부모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러므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대로 대물림이 된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은 우주의 법칙과도 같다. 그러므로 그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자녀가 있다면 거울 같은 그 자녀를 위해서, 그리고 없다면 미래의 자녀, 또는 나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서. 더불어 나와 함께 동석하는 동승자의 안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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