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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품있는그녀 Nov 26. 2020

다단계, 누구나 위험하다

그들의 사업방식

나는 그동안 불법 다단계 따위는 절대 빠지지 않을 줄 알았다. 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거절을 못하는 성격도 아니니까. 그런 것에 빠지는 사람은 정말 덜떨어진 인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첫 번째 글에 나를 바보 취급하는 댓글이 달릴 정도..)


일단 가장 친한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친구는 단 한 번도 '다단계'라던가 '회사 이름'을 말한 적이 없다. 그래서 어떤 성공적인 사업 설명회인 줄로만 알았다. 내가 다단계 설명회에 참여한다는 의심은 한 번도 못 했다.


내가 더 의심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친구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20년 이상을 친구로 지냈다. 친구네 살림을 다 파악할 정도로 나는 친구를 잘 알았고, 매우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내 친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멍청한 판단을 할 거라고 의심조차 못했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실수였다.


두 번째는 그들의 '접근방식'이었다. 일단 첫 구매가 끝나면 그렇게 소비자로 남던가, 또는 사람을 소개하는 사업자로 바뀐다. 사업자가 되기로 한 사람들은 그들만의 교육을 다시 받는다. 그 속에서 암 적인 존재를 만들어낸다.


먼저, '다단계'임을 밝히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네트워크 사업의 형식만을 빌려왔다며, 실제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대형 쇼핑몰이 네트워크 사업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것을 인터넷으로 실시간 접속하여 보여준다. 내가 집에 가서 다시 알아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의외로 학습지라든가 많은 부분에서 네트워크 사업의 형식을 빌려 사업하는 예가 많았다. 그렇게 다단계가 일반적인 사업 형식이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이것이 문제였다. 합법적인 다단계 네트워크 사업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코인, 화장품, 건강식품, 학습지, 쇼핑몰 등등.... 말도 안 되게 많았다. 나라가 허락한 네트워크 사업. 법적으로 보호받는 다단계. 문제가 될 것 없는 사업. 이것이 대한민국 네트워크 사업의 현주소였다.


또한 버스, 지하철, 마트, 온라인 쇼핑몰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다. 그들이 판매하는 물건을 구매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포인트로 내가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형식이었다. 5만 원짜리 바지를 구매하기 위해 55000원짜리 영양제 하나를 사는 것이다. 그러면 발생한 포인트 5만 포인트로 5만 원짜리 바지를 구매한다. 포인트가 아주 후해서 거의 동가로 구매가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정말 꿀 빠는 형태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여기에서 과소비, 필요 없는 소비를 하게 만들었다. 소비의 규모가 커지게 만들어 감각을 잃게 만들기 좋았다.


게다가 시중에서 팔지 않는 물건을 판매했다. 가격 비교도 할 수 없어 그것이 소비자가가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성분 비교를 해보았다. 밀크씨슬, 루테인 같은 제품을 성분 비교를 해서 다른 제품과 비교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제대로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수많은 제품군 속에서 비교라니. 너무 많은 정보가 나를 괴롭혔다.


시중에서 파는 물건도 있었다. 유명한 비타민이었다. 그런데 시중가보다 몇천 원 비쌌다. 일반적으로 500원이나 10원 단위로 비싸도 구매하지 않는 것이 옳다. 하지만 3~4천 원을 비싸게 사는 이유? 그 이후 발생할 포인트로 그만큼 무언가를 이용할 수 있으니까. 정말 꿀 아닌가??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하지만 처음 사업비 명목의 투자금이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됐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판단력을 잃게 만들기 충분했다.


초록창에 떠도는 이야기들. 그것에 대한 대응방식도 대단했다. 이미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이 사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세미나만 잠깐 참여했던 사람이거나, 또는 부모님 말만 듣고 불평하는 사람이라는 둥. 그 사람들 모두 세미나장에 데려와 앉히면 설득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있는 웅변!!


게다가 리더들이 30대 전후였다. 적게는 20대 후반, 많게는 40대 초반. 그런 리더들이 높은 직급에 올라 있고, 직급에 오르면 자동으로 돈을 버는 것처럼 보였다.(이 부분은 네트워크 사업의 특성이다)


그들을 보는 청년층의 눈에는 선망의 시선이 있었다. 실업, 실직자, 구직을 원하는 청년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보일까? 그리고 장년층의 눈에도 희망 어린 이채가 서려 있었다. 자신이 잘 되어 자식도 그렇게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 그런 것들이 그들을 미치게 했다.


언제까지 가난하게 살 거냐고. 이제 조금만 노력하면 멋진 신세계가 펼쳐진다고. 물건에 대해 알 필요가 뭐 있냐고. 대단한 물건들이니 믿고 권유해라. 물건 좋다고 권유할 것 없다. 어차피 물건은 좋다. 사업이 환상이다. 하지만 사업에 대해 말하면 끌어오지도 못하고 망한다. 알단 세미나장에 끌고 와라. 이 좋은 것을 왜 너만 알고 있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벌어먹고 살게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 달콤한 말로 수많은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었다. 이미 선동당한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의심을 품는 사람은 입도 뻥긋 못 한다. 그리고 의심을 말하는 사람은 멍청이가 된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멍청이.


나는 그제야 친구가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권유했다는 것을 알았다. 문제는 그 친구가 자신이 속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문제였다. 친구가 그 사업이 정말 환상적인 사업이고, 자신이 친한 친구를 위해 아주 선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너무 큰 문제였다. 결과는 나빴지만,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친구를 탓할 수도 없고, 결국 속아 넘어간 나를 탓하는 수밖에.... 속 터지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수개월만에 거절했다. 친구에게 그 사업이 잘못되었다는 것, 여러 가지 허점을 말했다. 친구는 그저 내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며 답답해했다. 우리는 평행선을 그었고, 25년의 관계는 거기에서 끝났다. 나는 친구가 그 사업을 그만두고 오지 않는 이상 그녀와 더는 잡담을 나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안타까웠지만 친구를 구제할 수는 없었다. 이제 나를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나도 너무 엉망으로 무너진 상태라, 친구를 도울 수 없었다. 나는 아무런 원망도 남기지 않는 것으로 친구와의 의리를 지켰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배신했다고 느꼈다. 철저하게 그들의 편에 서서 그녀는 그렇게 연락을 끊었다. 안타까웠다.


나는 돈도 잃고, 친구도 잃었고, 신용도 잃었고, 시간도 너무 많이 소모했으며, 상처도 너무 많이 받았다. 한마디로 너덜너덜해진 신경은 나를 극도로 우울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의 심각한 우울증이 시작되었고, 내 삶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google.com/amp/s/m.mt.co.kr/renew/view_amp.html%3fno=2019052710410213946


ps. 어느 다단계인지는 1편, 다단계를 소개받았다에 간접적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읽다 보면 같은 회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해당 회사는 이런 글에 하위 사업자들을 끌어모아 반박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저격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같은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 희망을, 지금 위협에 빠지는 이에게 전망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ps. 다단계 피해를 당하지 않은 분이 보시고, 아직도 이렇게 순진한 사람이 있느냐는 비난을 하실 거라면 그냥 나가주세요. 그분은 영원히 안전지대에서 안전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이 피해자는 내가 될 수도 있지만, 나의 가까운 가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주변 사람을 지킬 힘이 되기를, 또는 접근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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