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adhd 약을 먹이기 시작하고 변화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 효과가 없는 듯 보이더니, 아주 약간이지만 차분해지고,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는다는 것을 느꼈다.그것은 감동이었다. 아이가 내 목소리를 듣고 반응을 해주는 것 말이다.
일상에서 겪었던 문제
그 전에는 '듣고 있는 척'을 한다거나, 몇 차례 불러야 대꾸를 한다거나, 제대로 듣긴 들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느낌을 수차례 받았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하는 노력은? 아이의 집중을 내게로 가져오는 것. 손뼉을 딱 친다던지, 과장된 제스처를 한다던지, 흥미를 끄는 말을 던진다던지... 방법을 무수히 바꾸었다. 그 방법이 늘 통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아이에게 끊임없이 반응해주려고 노력했고, 아이를 일상으로 끌어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는 '일상'이 안 되는 아이였다. 똑같은 것들의 반복이 안 되고, 어느새 흥미를 잃어버린 활동은 자기 자신의 놀이 활동에 묻히고는 했다.
아이에게 양치를 시키면 도무지 나오지를 않는다. 밖에서 동생을 봐주며 큰 아이에게 어서 양치하고 나오라고 한다. 하지만 엄마의 느낌상 아이가 딴짓을 하는 것 같아서 문을 열어보면 어김없이 아이는 칫솔을 들고 놀고 있다. 지금쯤이면 끝내고도 남을 시간에, 아이는 칫솔에 치약도 묻히지 않았다. 그런 날이 하루에도 수차례, 그리고 매일같이 반복되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가 해주다 보면 부아가 치밀었다. 어린 동생은 스스로 한다고 하면서 옷을 다 버려가며 하고 있는데, 형은 엄마가 양치질을 해준다. 내가 돌봐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시간차를 두고 하다 보면 내가 너무 힘들었다. 3살 차이가 나는 형제인데 마치 쌍둥이나 연년생인 듯이, 모두에게 나의 손길이 가다 보면 나는 방전되고 만다.
'성장이 없는 것인가?'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두 아이의 차이가 커졌다. 둘째는 어려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성장에 따라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다. 그런데 첫째는 스스로 하는 것이 늘지 않았고, 스스로 하던 것들도 나중에는 내가 해주게 되었다.
그에 따라 지쳐가는 것은 나였다. 점점 아이에게 짜증 내는 횟수가 많아졌다. 화도 많이 냈다. 점점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고, 우울증을 겪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치유하고 나서 아이에게 방법을 바꾸어야 함을 깨달았다.
아이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칭찬하고, 보상하는 활동을 통해 아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주기 위해 노력했다. 놀이치료를 병행하며 아이가 겪는 문제들을 해결해주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약을 먹이기 시작하자 아이에게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조금 차분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내준 과제를 차근히 풀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를 위해 적어둔 '아침 준비 리스트'를 읽고 스스로 하는 날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 아침 준비 모습
나는 아이에게 여러 개의 과제를 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밥상 위에 그릇이랑 휴지 치우고, 양치하고 학교 갈 준비 하자!"
라고 하면 아이는 그릇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그래서 눈 앞의 과제 한 두 가지만 지시하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그릇 싱크대에 갖다 두고, 쓰레기도 버려."
쓰레기를 버릴 때쯤 다음 지시를 내린다.
"화장실 가서 양치 하자. 칫솔을 들고 치약을 짜는 거야. 하지만 칫솔을 들고 놀이를 하지는 않을 거야. 우리는 시간이 없어."
물론 하는 날도 있고 하지 않는 날도 있다. 그것은 늘 낌새로 알아차린다. 느낌이 '쎄~'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놀고 있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는 아이. 서둘러 치약을 짠다.
아이가 나오면 바로 옷을 준비해둔다. 물론 화장실 문 앞에 있어도 아이는 지나친다. '다음 순서'가 아이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동생이 먼저 준비하고 가서 옷을 스스로 입고 있으면 그리도 예뻐 보일 수가 없다. 나의 기쁨은 사소하다. 그냥 일상이다. 그런데 또다시 자신의 상상 놀이에 빠진 형을 보면 속이 터진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때론 나무라기도 하고, 혼을 내보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아무것도 못하고 점점 자신의 상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나는 머릿속에 '친절하게'를 떠올린다. 그렇게 의식하지 않으면 어느새 아이를 다그치는 내가 전면으로 나온다. 그러니 계속 친절하게 행동하도록 나를 컨트롤한다.
"동동아, 동동아? 동동, 동동? 옷 벗어."
몇 차례 불러서 (상상 놀이에 빠져있던) 아이가 나를 보면, 옷을 갈아입는 순서대로 지시한다.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하면 될 것을, 나는 먼저 옷부터 벗으라고 한다.
옷을 거의 벗을 때쯤 아이에게 옷을 주며 옷을 입으라고 한다. 이렇게 행동 단위로 한 두 가지를 엮어서 이어서 지시해야 매끄럽게 진행이 된다. 자동진행은 없다. 그리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날도 없다.
가방을 메는 것도, 처음엔 내가 늘 들고 나왔다. 하지만 스스로 들고 나오게 유도를 했는데, 급히 나올 때면 가방도 없이 현관을 나오기 일쑤였다. 또는 실내화 가방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을 군데군데 써붙인 리스트들이 있었지만, 아이는 그것을 보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늘 힘에 부쳤다.
약을 먹인 후 변화
아침에는 약을 먹고 바로 학교를 가기 때문에 약효를 느낄 수가 없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잠깐 정도 아이의 느낌이 차분해진 것을 느낄 뿐. 늦은 오후가 되면 아이는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변화를 알게 된 것은 주말이었다. 주말에 약을 먹이니 그 변화를 알 수 있었다. 과장된 행동이 적어지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듯했다.
또한 아이는 타인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전보다는 낫다는 말이다. 전엔 자신의 말만 앞서고, 중간에 끼어들기 일쑤였으며, 남이 말할 때 흥미가 없으면 듣지 않았다. 그것은 동생과의 사이에서 빈번히 일어났다. 그래서 답답해진 동생은 듣지 않는 형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답답한 듯 울고는 했다. 하지만 약을 먹인 후에는 그 과정이 조금 서서히 나타나거나, 차분하게 들어주기도 하였다.
마치 고장 난 폭주기관차처럼,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듯 내던지던 아이의 모든 활동들에 조금씩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즉흥적인 반응을 하던 아이는 점차로 그 반응을 서서히 하는 방법을 새롭게 배우는 것 같았다.
급격한 변화 따위는 없었다. 갑자기 차분해지는 것도 없었다. 아주 미세하게 달랐고, 그동안 꾸준하게 관찰해왔기에 알 수 있는 변화였다.하지만 아주 약간의 변화, 그것만으로도 나는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칭찬을 해주고, 고마움을 표현하며 아이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었다. 그렇게 하여 아이가 옳은 행동으로 인한 긍정적 피드백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점차로 바르고 옳은 행동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약물치료 없이 긍정적 피드백을 주는 것 만으로는 두 아이 육아에서 적어도 나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했다. 내가 늘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늘 케어해줄 수도 없었다. 엄마가 알려준 것을 다음에는 하나라도 스스로 해야 긍정적 피드백이 나갈 텐데, 아이는해야할 일들을 모두 뒤로 미루거나 잊어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친절히 알려주는 것도 수일이 지나면 지쳐버렸다. 더는 친절할 수도 인내할 수도 없이 한숨부터 나오고는 했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을 자책하기도 수차례였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에도 병이 들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내가 아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아이의 아빠, 그리고 시댁과 친정 부모님 등은 아이의 돌발적인 행동에 종종 당황하고는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배려 없이 나오는 행동들에 아이의 아빠는 많이 화를 내고는 했다. 아이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주변 사람들은 자꾸만 아이를 문제아 취급했다.
모든 관계들이 악화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제삼자 간의 관계까지도 깨질 만큼 위태로워졌다. 이는 아이와 부모, 그리고 우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아가서 학교 생활에서도 부정적 피드백을 받다 보면 입학 전 유치원에서 겪었던 따돌림과 문제아 취급을 그대로 겪게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위해 약물치료를 병행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