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품있는그녀 Nov 19. 2020

adhd 자녀 양육의 마음가짐

선서: 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부모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 그리고 댓글을 다는 분들은 자신이 adhd를 겪고 있거나 자녀가 adhd인 경우이다. 나의 글쓰기 분야는 육아이면서도 아동 adhd이고, 아동 adhd이면서 성인 adhd이고 그렇다. 이렇게 다른 시각이 다른 글을 만드는 거 아닐까 생각된다. 갑자기 글에 의미 부여 무엇...?


나는 adhd 전문가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adhd 발달 사항이나 전문적인 견해를 알고 싶다면 오은영 박사님 같은 분의 칼럼이나 영상을 보는 것이 효율적이겠다. 하지만 내 글을 구독하고 즐겨보는 분들은 분명 이유가 있다. 이것은 실전이다.


adhd, 그 이해할 수 없는 간극. 내가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인데, 내 자녀를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어느 자식이나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유독 adhd인 아이는 나를 미치게 할 작정을 하고 사는 아이 같다.


그럴 수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 아마도 과거 adhd를 겪었던 부모라면 아마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adhd를 겪었으면 더 잘 이해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니다. adhd는 남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상황에 비추어 볼 뿐이다.


물론 그 양상은 다양하다. 아주 잘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adhd를 겪었지만 진단을 받지 않은 부모가 얼마나 많은지 모를 거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adhd 적 소견이 옅어지거나 사라지거나 극복하거나 적응하게 된 여러 케이스들. 그들은 자신의 영향으로 태어난 adhd 자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짙다.


그리고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내가 잘했던 점을 본받은 자녀는 어여쁘지만, 내가 못했던 점을 본받은 듯한 모습을 보면 마치 내가 비난받는 듯 기분이 나쁘다. 결국 그게 다 나로부터 온 것인데. 게다가 그것은 나도 부모로부터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인데. 그런 것은 기분 나빠할 문제도 아닌 것인데...


런 점에서 자신의 adhd를 인정할 줄 아는 부모,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부모는 성인이다. 결국 그런 사람은 자신의 아픔을 대물림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부모다. 내가 아이를 낳은 이상, 나는 아이를 책임져야만 하는 부모다. 그 굴레는 벗어던질 수 없는 속박이다. 내가 아무리 도망간다고 하여 벗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부모가 된 이상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나의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나는 아이에게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육아 메이트 지오님의 영상에서 미취학 아동에게 부모는 보호자이며, 취학 이후에는 안내자, 성인이 되어서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던 말이 나는 인상 깊었다.


아이가 아무것도 못 할 때는 보호자로서 존재해야 하며, 아이가 스스로 자립을 배울 때는 바른 길을 향해 가도록 안내하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는 더 이상 개입도 관여도 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나도 성장해야 한다.


우리 부모에게도 미래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어떤 부모로 성장해 나아갈지 계획과 반성과 성과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도움을 흔쾌히 줄 수 있는 부모로 성장하지 않겠는가.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부모, 금전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모, 언제든 쉼터를 제공하는 부모, 맛있는 음식을 먹여줄 수 있는 부모, 그 모든 따스함을 베풀어줄 수 있는 부모. 그런 조력자로서의 삶을 꿈꾼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감의 부재와 흥미 위주의 관심사(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