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를 시켜줄 때 엄마에게 집중시키는 것을 매일 계속 요구했다. 아이는 쉽게 따라오지 않았고, 어느 날은 잘 되다가도, 또 어느 날은 혼이 쏙 빠지도록 전혀 무관심할 때도 있었다. 해도 해도 너무 안 도와준다 느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동생과 놀이를 할 때도 같이 놀다가 어느새 자기 혼자 놀면, 동생은 또 그게 무척이나 짜증 나서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형을 수차례 불러도 대답이 나오지 않기도 했다. 이제 점점 동생의 성격이 나빠지는 것 같았다.
나에게 뭔가 도와달라고 하고 저 혼자 슬쩍 빠져나가기도 했지만 자꾸 붙들어두었다. 아이는 싫어했지만 해야만 함을 계속 알려주었다.(이전까지는 아이가 내게 부탁하고 가버리면 내가 혼자 해서 주고는 했다)
한 번은 동생이 종이를 접어달라고 했다. 너무 쉬운 동서남북 접기인데, 알려줄 테니 잘 보라고 했다. 그런데 동생은 배우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냥 형이 다 해주길 바란 거다. 그래서 안 보고 자꾸만 다른 데 가서 노니까, 형이 자꾸만 보라며 화를 내다가 "안 해~!!"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리고 동생은 해달라며 떼를 쓴다.
드디어 역지사지 상황이 만들어졌다.
"동동아, 봐! 너도 도와달라 하고 동생이 보지 않고 다른 데로 가버리니 어때?"
"약았어! 나한테 시켜놓고 혼자 놀잖아! 나도 놀고 싶은데! 이런 거 쉬워서 한 번만 배우면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왜 안 하는 건데!! 나도 안 해줄 거야!"
"동생이 부탁하고 너를 봐주지 않으니 이상하게 은근히 기분 나쁘지? 맞아! 기분이 나빠! 엄청 나쁘지!! 그러니까 곁에서 봐줘야 되는 거야. 너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겠지?"
"네. 기분 되게 나빠요."
"그래!! 알면 됐어! 이제 너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
"네."
동생을 불러 곁에 와서 보고 배우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싫다고 떼를 썼다. 결국 동생의 동서남북 만들기는 내가 해주었다.
adhd 아동 곁에는 '친절한 설명자'가 있어야 한다. 하루 만에 되지 않으므로 알려주고 또 알려주어야 한다. 잔소리 같지 않게, 하지만 늘 다시. 그리고 인내심을 갖고 계속 반복해야 한다. 반복, 반복, 반복. 아이는 마치 매일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잊고, 잊고, 또 잊기 때문이다.
늘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을 유영하고 있으므로, 언제나 다음 할 일을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 과하지 않게. 늘 예상 가능하도록. 다음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하지만 똑같은 일상은 지겹다. 흥미가 떨어지고, 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집중' 시킬 수가 없다. 그러므로 똑같은 활동도 새롭게 느끼도록 계속 환원시켜 주어야 하며, 다시금 주의를 끌어올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니 나는 매일 너무 쉽게 지쳐버리고는 했다.
하지만 아이의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 나는 이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나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아이의 사소한 행동들로 내가 상처 받지 않으려면, 나도 끊임없이 '마음이 나쁜 것이 아니라, 미처 거기까지 생각 못 한 것.'이라고 스스로 주지 시켜주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부모로서 아이에게 부모 역할을 해줄 수 있었다. 감정적으로 치닫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내가 adhd를 겪어왔기에 과거로부터의 역경을 통해 아이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장점이었다. 하지만 내가 adhd이기에 아이와의 트러블 상황은 모든 나를 뒤흔드는 과정이었다. 어린 날의 아픔을 떠올리게도 했고, 인내심이 약하고 다소 충동적인 나는 아이를 더 오래 기다려주지 못하고 화를 내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시간을 겪는 아이가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나는 한 발 물러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기고 지는 문제, 힘겨루기 같은 문제, 자존심 세우는 문제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됐다. 그러기에 우리의 시간은 짧다. 아이의 이 소중한 시간들을 화와 원망과 증오와 잘못으로 지나기에 아이는 생각보다 금세 자란다. 나는 내 잘못을 인정하는 부모, 나도 처음이라 잘 못하는 부모,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노력하는 부모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화내서 무서웠지? 엄마가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싫어? 큰소리치는 거? 엄마도 고치려고 노력할게. 그런데 엄마도 잘 안 고쳐진다. 너도 네 문제가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똑같네. 그러면서 너한테만 뭐라고 했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무섭게 해서 미안해.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네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 그래도 엄마가 감정적으로 굴어선 안 됐어. 엄마도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그랬나 봐. 하지만 그러면 안 됐어. 네가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는 소중한 나의 아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