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아이가 본능적으로 깨닫는 욕구와 활동을 제외한 다른 일련의 과정들은 아이가 배워야만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으면 아이는 아주아주 어렵게 배우게 된다. 친구들의 따돌림, 타박, 견제 등을 통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알게 되었고, 깨닫게 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눈물로 쌓아왔고, 아픔으로 다듬어 왔다. 나도 adhd였으니까.
아이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 자리에 어린 내가 있다. 그리고 과거에 아팠던 경험들이 떠오른다. 친구들의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과 따돌림. 부모님의 잔소리와 타박. 그리고 수없이 받아온 체벌. 어른들의 문제아를 바라보는 시선들. 그리고 그 반대 편에 서서 나를 적대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나.
나는 내가 혼나거나 미움받고 있다는 것을 분위기상 알았지만, 그 이유를 제대로 알았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나고, 지나고 보면 내가 특이하고 이상하게 했던 행동들이 결국 문제가 되었던 것이었다. 이제 그 시간들을 지나오고 보니 내가 알게 된 것들. 하지만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고 싶은 사건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때 너무 아팠으니까.
그런데 나는 나의 아들을 위해 꺼내었다.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었다. 그리고 아이가 문제를 겪을 때마다 나는 나의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이야기해준다.
나는 아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먼저, 아이가 adhd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누구에게나 개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한 가지 성향일 뿐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나쁠 수도, 좋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것은 비교가 아니야. 너는 그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할 뿐이야. 그런데 그런 모습이 친구들이 보기에 이상하다고 여겨지면, 네 평판이 나빠질 수 있어."
"평판이 어떻든 네게 중요하지 않다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하지만 같이 놀 친구가 있기를 바라고, 너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이 있기를 바라고, 또 네가 힘들 때 네 곁에 널 위로해줄 친구가 있길 바란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너는 네 평판을 신경 써야만 해."
아이는 평판이라는 단어를 생소하게 여겼지만 이내 이해했다. 언어 발달이 좋은 아이는 어려운 단어를 쉽게 이해하는 편이었다.
"친구에게 네 것을 부탁하면 너는 그 친구 옆에서 친구가 널 도와주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해. 적어도 그 친구가 널 위해 쓰는 시간이 아깝다고 여기지 않도록."
"누군가 너를 돕고 있거나, 너와 함께 하고 있다면, 그러면 너 혼자 튀어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해. 함께 있어야 해.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을 상대가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해."
아이는 어느 정도 이해한 것도 같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어려운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실전이 시작됐다.
아이를 씻기기 시작하면 아이는 자신만의 상상놀이에 빠진다.
"가지 마, 여기 있어."
"?"
"동동아, 엄마가 널 씻겨주고 있어. 엄마는 먼저 샤워볼에 거품을 내. 봐봐, 이렇게. 이 샤워볼은 거품이 무척 잘 나서, 이 바디 클렌저를 한번 다 펌핑하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야. 그래서 엄만 언제나 반절만 펌핑해."
"아~!"
아이가 점차 협조하기 시작했다. 자꾸만 다른 놀이나 딴생각으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계속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래, 네가 그렇게 엄마랑 같이 하니 엄마가 훨씬 덜 힘이 드는구나. 고마워."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아이는 6세 무렵부터 혼자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말이다. 그리고 7세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물을 맞으며 놀이를 하느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래서 내가 자꾸만 개입하게 되었고, 엄마가 해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아이는 나 몰라라 하곤 했던 것이다.(그러면 동생은 혼자 씻고 마무리하고, 나는 더디고 느린 형을 도와주고, 그것을 자각하면 또 속이 쓰리다)
머리를 말릴 때도 자기 놀이에 빠져서 자꾸만 자세를 고쳐 잡아주고, 쫓아가면서 하려니 힘들었다. 모든 활동에 있어서 같이 하면 힘들었다. 곁에 있는 사람을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있는 아이. 그렇다면 그 곁에 있는 친구들은 또 얼마나 힘이 들까 싶었다.
이것은 실전이 되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그게 힘들어봤자 얼마나 힘들다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세하게 자꾸만 힘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매일, 매 순간 반복이 된다고 생각해봐라. 자꾸만 예민해지고, 짜증이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아이에게 자꾸만 부정적인 반응이 나갔다. 이미 아이와의 상호작용이 짜증과 화로 형성되고 있었다. 그래도 많이 많이 참고 참은 것이라, 트러블 상황에서 나의 그 뾰족해진 감정을 숨기거나 자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할 때는 에너지와 감정 소모가 너무 컸다. 뾰족해지는 마음과 그러면 안 된다는 이성이 늘 싸웠다. 하지만 나는 자제력이 그리 좋지 못한 부모였다. 하루에도 수차례 고성이 나왔다. 그리고 매일 밤 기도했다. '제발 좋은 부모가 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