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대장암은 정확히는 직장암이었다. 직장에서 암이 시작됐고, 간을 전부 점령했으며, 간으로부터 폐와 자궁으로 전이됐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꼬가 찢어지게 가난했었고,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기 시작하며 엄마가 열심히 사업을 돕는 것으로 사업이 일어났다. 아직도 회상하자면, 엄마가 없었음 아빠는 진작에 망했을 거다.
엄마는 고된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여 저녁식사를 차렸고, 식사를 마치고 나면 지쳐 쓰러져 잠드셨다. 그러다가 종종 머리가 무척 아프다고 하셨다. 진통제로 견뎠고, 진통제로 안 되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동네 병원에도 가셨고, 이런저런 병명을 얻어 오셨다. 그래 봤자 뾰족이 해결되지 않으니 엄마는 그렇게 병원을 다니는 것도 그만두셨다.
의사가 말하길, "진통제는 치료제가 아닌데요."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진통제가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엄마는 진통제로 버텼던 것 같다.
엄마는 고통을 참는 게 익숙해 보였다. 기력이 딸리니 적극적으로 치료활동을 다니는 것도 귀찮았나 보다. 게다가 누구 하나 엄마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느라 바빴고, 엄마가 케어해야 할 가족을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빴다.
그렇게 암이 장기 여기저기로 번져나갈 틈을 충분히 줬던 것 같다. 시간을 벌어준 것은 엄마 자신뿐 아니라, 엄마의 가족인 우리도 나빴다. 그렇게 바보같이 참았다고, 미련하다고 엄마를 원망했지만, 결국 스스로를 탓하는 비수였다.
삶은 계속되므로,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살아간다. 탓하고, 자책하고, 슬퍼하고, 체념하는 시간을 지나 치료를 시작했다.
병과의 싸움은 선택의 연속이다.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자신과 가장 잘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수술을 하고, 누군가는 약물 치료를 하고, 누군가는 입원을 하고, 누군가는 통원으로 치료하고....
이 길이 정답은 아니다. 엄마와 같은 치료를 받은 사람 중에는 운명을 달리한 환우가 존재하므로. 하지만 엄마는 표적치료를 12회 차(정해진 횟수) 실행한 이후 6개월 만에 전신에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기적이었다.
하지만 '암의 예후'는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수술이든 항암 치료든 재발이 더 무섭다는 것을. 물론 우리도 그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요양 병원에 입원을 병행하며 치료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결국 찾아왔다. 1년 만에 암은 간에서 다시 재발했다.
암은 어느 부위에 발생하든 무섭다. 하지만 특히 간은 까다롭다고 한다. 엄마 주변의 간암 환자들을 엄마는 많이 걱정했다. 그 정도로 간암은 무서운 존재였다. 암세포의 세력이 치료제보다 더 강한 편이었기 때문이리라.
다행히 엄마에게 재발한 암은 대장암의 잔존세력이었다. 하지만 본진을 잃은 암세포는 쉽게 제압이 가능했다. 다시 표적치료를 시작했고, 12회 차만에 전부 없앴다. 만약 기본 12회 차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보름에 한 번, 끝이 보이지 않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 고통이었을 텐데, 감사하게도 암세포는 사라졌다.
암환자가 된 이후로 '중증환자증'이 나와 의료 혜택을 받아 의료비가 매우 저렴해진다. 하지만 암세포가 전부 없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암환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아직 '완치' 판정을 받지는 못했다. 이후 5년 안에 재발하지 않아야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다음 목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