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폐암 환자였던 그녀

암 치료 중에 만난 인연

by 기품있는그녀

엄마는 대장암 말기 환자였다. 그리고 환우들 사이의 우상이 되었고, 스타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최악의 전이 상태에서 암을 이겨낸 생존자였고, 또한 특유의 따뜻함과 유쾌함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을 기꺼이 나누어주는 존재였으므로.


가끔 엄마를 만나러 엄마가 머무는 요양병원에 문병을 갔다. 그때마다 엄마 주변에 있는 환우들도 만났다. 그들은 환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활기차고 생기가 있었다. 물론 개중 심각한 상태의 환자도 있었다. 그런 분들은 두문분출 하기에 접점이 없었다.


그중에 내 마음에 남았던 사람이 있다. 나보다 어렸다. 얼굴이 곱고 예뻤다. 그녀의 어머니는 우리 엄마보다도 어렸다.


그때 나는 결혼해서 첫째를 아기띠에 안고 다녔다. 그날도 첫째와 함께 갔다. 그리고 엄마와 같은 병실의 그녀를 만났다. 픔을 견디는 얼굴로 우리 일행을 본 그녀는 내 품에 있는 아이를 보며 얼굴이 밝아지고 관심을 보였다.


"암세포도 젊으면 힘이 세."


엄마가 나중에 내게 한 말이다. 엄마는 자신이 암환자였으므로 나와 오빠의 가족력이 높아진 데 대한 우려를 많이 했다. 그리고 엄마가 지켜본 젊은 층의 암에 대한 어떤 생각을 내게 말해주셨다.


엄마 말에 의하면 엄마의 암세포는 엄마처럼 나이가 많아 그렇게 세력이 강하지 않지만, 젊은이의 암은 그만큼 세력도 세서 전 초기에 발견하지 않는 한은 예후가 좋지 않다고. 그래서 엄마는 안타까워하셨다. 젊은 나이가 아깝다고.


잘 가르쳐 놓고 잘 여읜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시한부의 삶을 살게 되었으니 그 애달픈 마음이 얼마나 클까. 곁에 붙어서 간호를 하는 그녀의 어머니의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 후 엄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갖고자 노력했단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그리고 결국 20대 후반에 폐암 환자가 되었단다. 내가 만났을 당시의 그녀는 30대 초반이었고, 암이 뼈에 전이되었다고 했다. 말기였다.


뼈암은 통증이 정말 심하단다. 진통 패치를 붙이고 진통제를 투여해도 아픔은 지속되나 보다. 그렇게 버티던 그녀를 엄마는 이렇게 추억했다.


"인성이 정말 좋은 아이였어."


그래서 더 아깝고 안타까웠다고. 다른 환우들의 사랑을 받고, 지지를 받았음에도, 결국은 하늘의 별이 되고 만 그녀. 엄마는 좋은 사람이 떠났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겪은 이별이기에 엄마는 담담한 듯 보였다.




최근 20대 청년층 암 발병률이 40%가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환자를 겪을 기회가 적었다. 수술 치료의 비중이 높고, 사회로 빠르게 복귀하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또는 엄마의 말대로 암의 잠식 속도가 병을 이겨내는 속도보다 빨라서 걷잡을 수 없기도 했던 것 같다.


아이를 낳은 내 입장에서 아이를 갖고 싶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내게 긴 여운을 남겼다. 게다가 아이를 보는 그녀의 눈빛은 고통에서 잠시 나와 꿈결을 걷는 듯 환해 보였으니까.


짧게 왔다 간 그녀의 인생이 너무 안타깝다. 나의 20대는 안전해서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 아이들에게 미래가 그리 핑크빛은 아니라는 생각에 암울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직계(외할머니)에 암 환자가 있으므로.


비율에 긍정을 넣어서는 안 된다. 너무 객관적이어서도 안 된다. 비율은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이 0%가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경험이 남의 일이 아닌, 나에게도 또는 내 주변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심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늘 대비하며 살아가는 것. 그녀를 만남으로써 내가 배운 점이다.


사회에 나아가 아직 꽃도 피지 못한 젊은 층이 '나는 어리니까 건강할 거야'라고 방심하지 말길 바란다. 건강 관리는 평생에 걸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습관화되어야 중 장년층이 되어서도 그 이후에도 건강하게 삶을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희망과 긍정적인 마인드만큼 병을 이길 수 있는 치료제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좌절하고 꿈을 포기하기보다, 단 하루라도 삶을 연장할 수 있다면 그 희망에 모든 것을 걸기를. 20대니까. 더 열정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하기를 바란다. 내가 꿈꾸는 만큼, 희망을 바라보는 만큼. 그만큼 더 살아갈 날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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