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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복 오다

by 김두선

가을인가 보다. 추억에 젖는 계절 탓일까. 무심히 지나던 지인 몇이 뜬금없이 소식을 전해온다. 관계를 지속적으로 갖는다는 게 내겐 참 잘 안 되는 일 중의 하나였구나... 문득 지난날을 돌아다보게 된다.



관계를 지속하려면 동질감이 필요한 듯하다.

예를 들면 취미가 같거나, 신앙이 같거나, 성향이 비슷하거나 생각이 잘 통거나 하는.

적어도 뭔가는 같은 질감을 소유하고 같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공통의 화제에 열 올리고 논쟁하거나 투합하며, 하다 못해 하릴없이 수다만 떨다 돌아와도 뒷맛이 쓰지 않는 법이다.



혈족이니까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고, 유익하니까 관리 차원에서 곁에 둔다는 식의 관계를 유지한 기억이 내겐 딱히 없다. 그러다 보니 그저 스치는 바람처럼 잠시 내리다 멈추는 소나기처럼, 짧은 순간 마주하다가 얼마 후에는 다시 시들해지고 잊히고를 반복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 하지만 어차피 이제는 정리하며 살아야 할 날들인데 굳이 사람을 그리워할 일도 아니라 여기며 부질없이 다가서는 외로움을 떠밀듯 내어 쫓았다.



이런 내게 몇 해전부터 가까이하게 된 문우가 있다. 그녀는 그야말로 글 속에 푹 빠진 열정 작가이다. 우리는 인연이라 여길 만큼 묘한 만남으로 연결되었는데 지금은 함께 여행을 떠날 정도로 가까워졌다.

가끔씩 만나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함께 글을 쓰고 살피고 감동하고 비평하면 네댓 시간쯤은 지루한 줄도 모르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만다. 함께 소스라쳐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 무릉도원을 헤매다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기분 같다고나 할까.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 말고 좋아서 하는 일. 그 일로 선물처럼 연결된 글벗. 복 중에 꽤나 괜찮은 복 하나를 더 얻은 셈이다.



시간의 길고 짧음은 시곗바늘 도는 데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을 느끼는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다.

백만 번 공감하면서 오늘도 글 한 편을 나누고 돌아오는데, 밟히는 마른 나뭇잎들의 서걱대는 소리가 서럽지 않았다.


늦복 하나 내게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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