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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

<6.5평 월세방을 짝사랑하는 일>을 읽고

by 김두선

빵, 하고 웃음이 터졌다. 누구야? 집이 아니라 방살이에 전전해야 하는 이 시대의 비혼 청년을 대변한 글쓰기의 주인공은?



집들이 겸 딸을 보고 왔다. 문이라고는 '화장실 문과 대문뿐'인 방이 아니라, 공간 분리가 분명한 집의 개념을 갖춘 곳이었다. 방문과 화장실 문. 거실과 주방을 구별하는 넉 장의 미닫이 문. 베란다를 분리하는 두 장의 미닫이. 그리고 도시의 하늘이 쏟아져 들어오는 통유리 밖으로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의 운치를 커피 한 잔에 누릴 공간이 있는 곳.


문득 딸의 타향살이를 대충 요약해 봤다. 동과 도시를 넘나든 것이, 파리에서의 이사까지 합치면 십수 번. 평생을 살아온 나보다 이사 경력만큼은 대 선배인 셈이다.


원래 보헤미안적인 삶을 원한 것은 아니나 월세의 폭에 따라 타의적 이사를 하게 된 딸. 처음 대기업에 다닐 때만 해도 스무 평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지내더니 창업을 하고 난 후부터는 줄곧 6평 남짓한 방에서 지냈고, 스타트업 대표로 프랑스 파리로 날아간 이후에는 서울에 비워둔 방 값 아깝다고 공동 대표인 개발자와 짐을 한 곳에 합쳐놓고 떠났었다.


문제는 한국에 업무를 보러 나와 있을 때이다. 방에서 어쩌다 함께 움직일라 치면 한 사람은 등을 벽에 딱 붙이고 비켜서 있어야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아터진 공간에서 몇 주 내지 몇 달씩 고역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하긴 집세 비싼 파리에서는 더 극한 상황이라고 했지만.



십수 년만에 짐이 가구로 승격된 거실에서 테이블 위에 한가로이 놓여 있는 책 두 권을 발견했다. 그중 한 권은 별난(?) 짝사랑 이야기였는데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기 종료! 즉시 그녀 둘의 이야기를 대신 써준 작가의 이름 검색에 들어갔고, 브런치 작가임을 확인했고, '구독 중' 버튼 누르기를 했고, 작가의 다른 책 한 권을 인터넷에서 더 주문했다.



매번 들어설 때마다 현관에서부터 가재도구를

발로 밀어젖히며 방까지 진입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 그럼에도 키 큰 여자와, 날 닮아 키 작은 여자 둘의 조합이라 그나마 지낼 만하다며 천연덕스럽게 방실거리던 그녀들. 마침내 방들이에서 집들이로 진화된 2022년 2월. 나는 딸에게 본가로부터의 '완벽한 방문객의 자격'을 승인해 주었다.


서울 바깥으로 밀려면 어떻고, 임대 아파트면 어떠랴. 실내 동선이 길어서 살 빠지겠다는 엄살이 감사로 받는 꽃노래인 것을. 다만 간절히 바란다. 대기업을 탈출하며 저지른 그녀들의 반란이 언제까지나 폭주하는 진행형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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