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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

by 김두선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오묘한 질감의 차이.

어제 문상한 지인의 영정 앞에서 어휘 하나를 두고 혼자 생각에 빠져 들었었다.

세상을 떠나다.

세상을 버리다.


'떠나다'와 '버리다'

어감의 차이는 꽤나 다다. '떠나다'라는 말속에는 남아 있는 것에 대한 일말의 미련 같은 것이 느껴지지만 '버리다'에는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결연함으로 다가온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시점 어느 때에 생을 마감하게 되더라도 끌려가지 말고 스스로 선택한 최후처럼 의연히 떠날 수는 없을까…


잘 살았던 못 살았던 태어났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대가와 긴긴 시간을 지불하며 살았는데,

올 때도 갈 때도 그저 어떤 힘에 떠밀려 한순간 오고 또 가는 걸로 생을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말이다.


같잖은 허세라고 해도 좋다. 최후의 순간에 나는 이렇게 말해야지. 나는 세상을 떠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버리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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