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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백숙

by 김두선

말복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보양식으로 중닭 세 마리를 샀다. 제 날 먹어야 맛이라지만 복날이 되면 중닭도 금 닭으로 몸값이 뛰니 미리 먹어 둘 요량으로 날을 잡았다.



번번이 느끼는 거지만 닭고기는 먹고 나면 먹은 것보다 내다 버리는 것이 더 많다. 특히 백숙은 먹을 땐 좋지만 그 뒤처리가 얼마나 복잡다단한지.

생닭을 삶아낸 물로 닭죽을 만들 때는 기름을 떠내고 사용해야 하는 까닭에 우려낸 물을 냉장고에 넣어 식힌 다음, 웃물에 엉긴 기름을 걷어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걷어낸 기름 따로 배출하는 과정도 번거롭다. 배관에 끼거나 쌓여 막힐까 봐 함부로 배수구에 버릴 수가 없어 종이에 싸서 일반 쓰레기로 버리거나, 냉동고에 얼려 두었다가 음식물 쓰레기로 배출해야 한다.

또 뼈다귀는 음식 폐기물에 넣어서는 안 되고 일반쓰레기로 분류해야 한다. 문제는 요즘처럼 삼십 도를 훨씬 넘는 무더운 날씨일 때다. 일반쓰레기 봉지에 닭뼈를 넣어서 봉해 두면 하루도 못 가서 꼬물꼬물 한 것이 생겨나 사람을 질겁시키곤 하니 말이다.



오늘은 갈등하다가 반칙을 결심했다. 닭을 삶은 물에 풀어진 기름은 걷지 않고 슬쩍 배수구로, 뼈다귀는 버려진 음식물로 적당히 덮어서 눈 딱 감고 편하게 처리하기로.



음식물 수거통을 대문 앞에 내다 놓고 후다닥 돌아서는데 가슴이 콩닥거렸다. 마치 남의 것을 훔치다가 들킬까 마음 졸이는 사람처럼. 그때였다. 얼마 전 TV에서 들은 어느 인문학 교수의 질문이 번득이는 칼날처럼 마음 한가운데를 베며 지나갔다.


"우리 국민도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강의의 대강은 이다.

<나라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는데 국민은 여전히 선진국답지 못하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당할 일로 생각하는 것. 사람을 상상하는 것. 이것이 미래를 내다보는 창의적인 사고다. 하지만 이것 쉬운 일이 아니다. 고도의 지적 수준을 요하는 길이며, 탁월하고 창의적인 생각 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현재 우리 국민의 지적 수준은 여전히 여기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에 가끔은 후진국 수준으로 침몰하거나, 여전히 중진국에 머물고 만다.

그렇다고 사회를 보며 왜 이럴까 좌절하지 말고

‘나는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보라.>


'미래를 내다보는 것. 사람을 상상하는 것…'



음식물 분쇄기의 날이 무시로 망가지면 어떻게 될까. 그게 내 일이라면 어떨까… 공동주택에서 다른 사람의 고의로 배관이 막히면 내 기분은 어떨까. 다시 돌아서서 음식 폐기물 수거통을 들여와 뼈다귀를 가려내는데 그의 한 마디가 한 번 더 나를 짓누른다.



‘알고도 하지 않는 것은 사기 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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