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그림 이야기를 나누다가 언젠가 TV 프로 <그림 도둑들>에서 본 고흐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났다.
죽어야 사는 남자 ‘고흐’
타이틀에 호기심이 충천해서 몇 날 며칠을 기다렸다가 본방사수를 지켜냈었다. 서른일곱의 짧은 생애. 정신질환과 고독, 외로움과 뼈저린 가난 속에서 허덕이며 살다 간 천재 화가. 여기까지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생전에 팔린 작품이 단 한 편뿐이라는 건 처음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십여 년 동안 그려낸 작품이 세상에 알려진 것만 해도 8백 여 점이 넘는다는데 너무 잔인하고 기막힌 일 아닌가. 그가 생전에 천재성을 인정받고 배부른 화가로 살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런 명품 그림이 나오지 않기라도 했을까. 운명의 장난이란 말은 이럴 때 써야 하지 않을까. '죽어야 사는 남자' 단 한 줄의 표현이 말해주듯 고흐의 삶은 내가 그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지난하고 처절했다.
생전에 판매된 한 장의 그림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
이다. 그림을 산 ‘안나 보흐'는 유명한 도자기회사 창업자의 후손으로 벨기에 화가 모임에서 활동했다. 자료에 의하면 안나 보흐의 동생과 고흐는 이미 아는 사이로서 고흐가 그의 초상화를 그려줄 정도로 친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나마 팔린
한 점의 작품도 친분이 있는 관계에서 이루어진 셈이라는 말이다.
동생 테오의 후원이 있었지만 지독하게 가난했던 고흐. 그의 작품에 특히 자화상이 많은 것은 모델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면서 자화상을 그렸기에 그림의 좌우가 바뀌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꿀팁이다.
그의 죽음을 앞당긴 것은 고갱의 절교 선언이 한몫했을 터이다. 두 사람은 예술적 영감이 서로 달라서 불편했지만 돈독한 사이였다. 하지만 괴팍한 고흐를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고갱이 떠나자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잘라버린 사태가 발생했다. 고갱으로부터 가시 돋친 말을 들은 충격에 귀라도 자르지 않고는 차마 견딜 수 없었나 보다.
나날이 초췌하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매번 자화상을 그려내는 고흐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화가는 그렇게 배고프면서도 왜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또 글을 쓰는 작가는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을 끊임없이 왜 쓰는 것일까...
끝까지 이 길에 남는 이유. 그것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하며 사느냐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리라.
회자되는 말에 의하면, 집에 해바라기 그림을 걸어두면 재물이 들어온다고들 한다. 아마도 고흐의 대표적인 작품인 해바라기가 그의 사후에 엄청난 고가로 팔리면서 생겨난 뒷이야기는 아닐는지. 우리 집 주방 벽에도 해바라기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고흐의 그림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림 그리는 것을 취미로 가진 내 딸이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작품이다.
새해엔 액자 속 해바라기가 정말로 재물 운을 가져다주려나?
은근히 다시 한번 올려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