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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선 Dec 07. 2023

알배고 낳니라꼬


‘가자미가 돌아오는 시간’이라는 수필 한 편을 읽었다.


<<파장 무렵의 장터에서 가자미를 앞에 놓고 손질하던 할머니가 물 거리가 좋다며 사라고 부추긴다.  

‘알배고 낳니라꼬 예비서 그렇지, 꾸 무모 꼬시다 예.’


알을 배고 낳느라고 야위어서 그렇지, 구워 먹으면 고소하다는 말이다.>>



머리가 삼바구니 같은 할머니, 생미역 몇 오리를 사서 담으며 작은 짐수레에 간신히 몸을 세운 할머니, 아직 팔지 못한 홍합을 까고 있는 새우등을 하고 앉은 할머니, 물건을 사고파는 마른나무이파리 같은 할머니의 손...

이들 모두가 작가의 눈에는 ‘알배고 낳니라꼬 예빈’ 채반 속 가자미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다.




그 가자미의 노쇠한 모습이 내게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요즘 들어 손거울을 보는 횟수가 부쩍 는 것도 그런 연유이다. 젊은 날에는 아침에 한 번이면 온종일 두 번도 손에 거머쥐지 않던 거울이다.

하물며 꾸며서 별 수 있는 나이도 아닐진대, 자꾸만 거울에 손이 가는 까닭이 조금은 애달다.



풀먹인 연줄처럼 까슬한 머리카락. 쳐진 쌍꺼풀 탓에 삼각 김밥처럼 변형된 눈꼬리. 톡톡톡, 뽀얀 분으로 메꿔도 가려지지 않는 잔주름. 도무지 대책불가이다.

알배고 낳니라꼬 예빈 가자미처럼 나의 젊은 한 시절도 그렇게 가버렸나 보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 키우는 마음은 다를 바 없을 텐데, 낳기만 하면 제 밥그릇 제가 차고 태어난다던 내 부모님 세대의 배짱이 없어서일까? 

내게 있어 자식 키우는 일은 내 어머님 세대보다 훨씬 힘든 듯했다.

물질적으로야 나아졌지만 치열한 경쟁과 정신적 압박감 속에서 자녀를 키워내는 것은 언제나 살얼음을 딛듯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으므로.





‘중매를 잘하면 술이 석 잔, 잘못하면 뺨이 석대’ 란 말이 있다. 한데, 자식은 거두절미하고 ‘잘 키우면 본전’이라고들 하니, 아무튼 자식 키우는 문제는 두 사람의 인생을 연결시키는 중매보다도 분명 더 엄중한 일인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그런 수고 끝에 키워낸 자식이니 자식 자랑만큼은 열을 올린다 해도 애교 정도로 받아넘길 수 있는 일일 테다. 장수에게는 전동箭筩에 든 화살이 힘이요, 백발의 노부에게는 자식이 그 힘이며, 영광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 자부심 앞에 알배고 낳니라꼬 예빈 세월은 증거 인멸하듯 지워지고 만다.

그래서일까. 위로 거슬러 오르는 사랑은 변하여, 아래로 내리 흐르는 사랑만큼은 세상인심 다 변해 그나마 유지되는 듯하다.



‘알배고 낳니라꼬' 가자미를 닮아 예빈 이 땅의 어머니들이여, 주고는 잊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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