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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선 Dec 30. 2023

광대로 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다자이 오사무의 저서인 《인간 실격》을 읽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이며 일본 쇼와 시대의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


이 작품은 내용과 작가의 현실이 동일시되고 있어 자전적 소설로 평가할 수 있다. 책 속에는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하는데 한 명은 서문과 후기에 등장하는 수기를 읽는 사람으로서의 인물, 다른 한 명은 이야기의 주인공인 '요조'이다.


세 편의 수기로 나누어진 구조를 가진 이 소설은 주인공의 내면세계가 처음부터 끝까지 고백체 형식인 점. 그리고 작가 생존 당시의 시대적 영향으로 인하여 퇴폐주의와 염세주의적인 관점이 기저를 이루는 것이 작품의 특징이라 하겠다.


 작품 속에서 가장 머리에 남는 단어 하나를 고르라면 ‘광대’이다. 광대란 가면을 쓰고 악귀를 쫓고 복을 빌어주는 일을 통해서 관객들의 흥을 돋우고 즐거움을 주려는 일을 목적한다. 작품 속의 주인공 요조는 그러한 의미에서 진실로 광대였다.


그를 그답게 살 수 있도록 하지 못하게 한 결정적 요인은 무엇일까? 모든 상황에서 일을 처리하는 그의 행적은 마치 고구마를 먹고 물을 마시지 못했을 때의 목 막힘처럼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사회적인 인간관계에서는 부득불 체면과 위선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남에게 충격을 주지 않으려는 요조의 지나친 조심성과 민감한 윤리의식은 거의 병적이다. 그 결과 요조는 어려서부터 광대놀음에 진심으로 열심을 보였다.

새로운 신조어와 사건들을 접하기 위해 매달 열 권이 넘는 신간소년잡지를 구독했고, 흥을 돋우기 위한 유머집을 구해서 부지런히 읽었다. 그 결과 그는 학교에서 이상한 의미에서의 존경받는 존재가 되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큼 남을 속이다가 어느 한 명의 전지전능한 자에게 들키는 바람에 산산이 부서져, 죽기보다 더한 큰 망신을 당하는 것이 제가 규정한 '존경받는다 '는 상태에 대한 정의였습니다. 본문 22쪽에서>



 어린 시절, 하녀ㆍ머슴에게 능욕을 당했지만 요조는 그들의 범죄를 부모에게마저도 호소할 수 없었다. 인간에게 호소하는 수단에 대해 조금도 기대하지 않는 깊은 불신 탓이었다. 그의 불신은 어린 시절 한 사건으로부터 확대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소속되어 있는 한 정당의 유명 인사가 연설하러 온 극장에서 연설을 듣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무리 속에서 아버지와 막역한 사이로 지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아버지를 마구 헐뜯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요조는 인간 사이에 서로를 속이며 적당히 유지하는 그 평화적 위선에서 자신과 같은 광대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적 모순을 알아갈수록 더욱 필사적으로 광대가 되어갔다. 첫 번째 수기를 읽은 다음, 서문에서 밝힌 열 살 전후의 요조의 사진이 어떠한 모습일지 머릿속에 상상되었다.



<인간은 주먹을 꽉 쥐면서 웃을 수 있는 족속이 아니다. 원숭이다. 원숭이가 웃는 얼굴이다. 그저 얼굴에 추비한 주름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불결하고 괜히 사람을 벌컥 화나게 하는 표정의 사진이었다. 나는 이제껏 이토록 불가사의한 표정을 짓는 아이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서문 8쪽 중에서> 




두 번째 수기는 두 번째 사진 속 이상한 미남의 주인공인 요조의 중학생 시절로 시작된다. 그는 반에서 가장 빈약하고 형편없는 바보천치 같은 학생인 다케이치에게 당한다. 계획된 실패로 웃음을 자아내려는 광대놀이가 다케이치의 눈에 여지없이 벗겨지게 된 것이다.

이 실패를 회복하려는 요조의 심리상태는 지옥이었다. 차라리 그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로 작심하고 다케이치를 회유하는 요조의 노력은 마치 ‘적과의 동침’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두려워서 차단하기보다 그것을 끌어안고 화목을 선택하는 요조의 행동은 한편으로는 감정도 분노도 없는 투명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최후에 비겁해지고 마는 인간존재에 대한 비애감마저 들게 한다.

현실부적응과 인간관계의 고통. 이로 인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광대 짓도 그가 지향하는 화목된 삶에 절대적인 도움은 되지 못했다. 결국 작품 전체에서 발견되는 그의 정신적 세계의 흐름은 온통 어긋나버린 것들 투성이다.


사랑받는 불안이라든가, 인간에 대한 무섬증이라든가, 세상의 합법이 되레 무섭고 수수께끼처럼 느껴져서 비합법의 세상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진다든가, 겁보는 행복에도 상처를 입는다, 지옥이 있다는 것은 믿어도 천국이 있는 것은 믿지 못한다, 등의 표현은 요조가 얼마나 철저한 음지형 인간인가를 생생하게 증명해 준다.



 요조의 인생에 끼어든 여자는 크게 압축하면 세 명 정도로 볼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첫 번째 동반자살을 시도한 유부녀 쓰네코. 3번째 수기에 등장하는 여기자 시즈코, 그리고 처음으로 연하의 여자였던 요시짱이다.


그녀들의 등장은 요조를 철저히 인간 실격이라는 낱말을 주홍글씨처럼 붙여준 배경 인물이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 그에게도 한줄기 섬광은 있었다.

그가 계속 이러한 의지로 나아갔다면 그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세상... 개인과 개인의 다툼이고 게다가 그 자리에서의 다툼이며 그 자리에서만 이기면 된다. 인간은 결코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노예조차 노예다운 비굴한 앙갚음을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자리의 단판 승부에 의지하는 것 외에는 살아남을 방도가 없다.


대의명분 따위를 내세우지만 모든 노력의 목표는 반드시 개인이다. 개인을 뛰어넘고 나면 또다시 개인, 세상의 난해함은 개인의 난해함, 드넓은 바다는 세상이 아니라 개인이다. 본문 99쪽에서>


짧은 인생이었지만 술과 담배, 마약과 매춘부. 혼란과 좌절 속에서 방황한 그는 자기모순과 자기혐오에 휩싸여 회피형 인간으로 살아간다. 관계가 고통스러워 가면 뒤에 자신을 철저히 은폐한 인간.


전쟁의 패망으로 인한 당대의 현실 앞에서 어떻게든 사회 속에서 융화되고자 애썼지만 배반과 절망이라는 인간의 부조리와 고독 속에서 철저히 인간 실격이라는 그는 패배자로 망가져 갔다. 그가 얼마나 지난한 삶을 살았는가는 책 마지막에 두 줄로 정리된다.

 

<저는 올해로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부쩍 늘어 사람들 대부분은 저를 마흔 이상으로 봅니다.>  


책을 덮으며 가슴속이 아프고 시끄럽다. 삶이란 원래 기막힌 것이다. 그러나 힘들다고 회피하다가 밀랍이 불 앞에 녹아내리듯 인생이 무너진다면 아무에게도 내일은 없는 것이 아닌가.


연어는 알을 낳기 위해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하다못해 땅에 떨어진 낙엽도 구르면 바람을 일으키는 법이다. 혹여 지금의 청춘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여전히 안고 있다 하더라도, 그나마 이 시대에는 영악함을 발휘할 수 있는 근육 정도는 든든히 붙어 있지 않을까 믿고 싶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마지막에 묻는 그의 내면에서의 질문에 분명하게 응답한다.

무저항은 죄이다. 저항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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