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딸과 문학기행을 기획했다.
시끌시끌한 정국에 한가로이 기행이라니!
못내 찜찜했지만 특별히 관광차 가는 일은 아니거니 여기며 단행했다.
딸과 만난 첫날 오후, 우리는 생각이 같았다.
가자, 국회의사당 앞으로!
TV화면에서만 보며 애태웠던 장소였다.
무려 4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게 된 곳.
8년 전 광화문에 동참했던 촛불시위가 뭉글뭉글 떠오르며 마음이 쓰리고 알알했다.
우리가 바닥 잡고 앉은자리는 국회 건물 정면이 바라다보이는 곳이었다.
목이 터져라 외치는 함성 속에 힘을 다해 목소리를 보탰다. 이건 아니니까. 나는, 그리고 우리는 떠나겠지만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내 나라는 영존해야 하니까.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허리와 무릎으로 전해지는 통증이 감당하기 어려워질 즈음, ‘의사정족수 부족’이라는 분통 터지는 결과를 들었다. 국가가 가해자가 된 이 시점에도 제 잇속만 차리려는 그들의 뻔뻔함은 언제나처럼 할 말을 잃게 했다.
서둘러 먼저 일어선 귀갓길에는 버스 두 정류소를 지나도록, 사방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시위대열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본무대 말고도 군데군데 무리 진 사람들 속에서 분노를 토해내는 시민들... 간간이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일어서 외치는 임기응변은 썩은 물을 밀어내고 흘러 들어온 샘물처럼 힘 있고 신선했다.
무엇이 두려웠을까.
그날 저녁 경찰은 백만 정도 모인 인파를 십만으로 축소하여 발표했다.
Ⅱ.
당일치기로 변경된 문학기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옛 마제마을(남양주), 정약용 선생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선생의 생가와 마을, 그리고 실학 박물관에서 타임머신을 타듯 그 시대의 역사 속으로 까무룩이 빨려 들어갔다.
실학實學.
학교 다닐 때, 배경보다는 어휘 자체에 집중했던 까닭에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두 단어.
‘이용후생’ , ‘실사구시’
그래서일까. 실학에 대해 여태껏 내가 가진 이미지는, 실학의 등장이 당대의 생활의 편리를 가져왔었다는 정도였다.
‘실학은 허학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현실성, 실용성, 진정성을 강조한다.’
팸플릿에 박힌 이 첫 구절처럼.
실학의 등장은 진정한 애민愛民사상에서 출발되었다.
생각해 보면 거중기, 녹로, 유형거 등이 권세 높은 나라님이나 돈 많은 부자들에게 뭐 그리 필요했겠는가.
등짝에 소금꽃이 피도록 노동하며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백성들.
그들의 삶을 함께 아파했기에 정약용 선생은 백성들의 짐을 덜어줄 무언가에 계속 집중하고 있었던 게다.
참으로 애민사상 없이 실학을 논하는 것은 팥 없는 붕어빵이나 다름이 없다.
지금 이 나라의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런 정신 아닐까?
오늘날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며 서약하고 나선 권력가들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
권심과 이심이 맞물려 참된 뜻은 사라지고 천하가 날로 헛됨으로 치닫고 있음을 한탄하던 다산.
몰지각한 벼슬아치들에게 진정한 애민가였던 정약용 선생의 말씀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재물을 많이 쌓아두는 것은 베푸느니만 못하다.’
Ⅲ.
은근히 책 욕심이 많은 딸이다.
여전히 책상 한편에는 읽은 책과, 앞으로 읽을 책이 수두룩 쌓여 있다. 그중 요즘 회자하는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소년이 온다>
한 페이지, 페이지를 자세히 읽어 내려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광주의 열흘간을 어찌 ‘생지옥’이라는 단어 하나로 일축시키랴.
내가, 우리 가족이 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광주의 참사를 지금껏 무심히 여겼다는, 부끄러운 양심이 무참히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분수를 끄세요. 아직은 아니잖아요."
광주의 열흘이 끝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청 앞 분수대에 다시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그 광경을 보며 책 속의 선주는 시청 민원실로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지속적으로 걸려오는 그녀의 민원에 더는 참지 못한 듯 이제는 잊어버리라는 대답이 무심하다.
그렇게 쉽게 잊힐까.
그렇게 모든 것이 정말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분수대를 끄라는 책 속의 그녀.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받고도 고향 아버지의 축하 잔치를 거절한 작가 한 강.
폭력과 고통에 시달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오늘도 '작별하지 않는' 작가의 진정성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12. 3 계엄령이 성공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문득, 어느 망령된 노인의 겁 없는 한 마디를 떠올린다.
제주 4.3이, 광주 5.18의 폐해가 자신에게, 내 가족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재현되었더라면 어쩔 뻔했어.
12.3의 불씨가 아직 남아 있다는 소식에 나는 체머리를 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