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엄마

정진영 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읽고

by 김두선

지금은 AI 시대. 심지어 인간 아바타 AI의 생성은 AI와 사람 사이의 교감까지도 가능케 한다고 한다. 과학의 한계의 끝은 어디일까? 이 시대가 추구하고 있는 최첨단의 과학.

그 특별한 글감에 대한 궁금함과 함께 작가가 추구하는 메시지 안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 전부가 아니다. 인간도 그렇다. 한 인간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그의 이미 사라진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돌아봐 줄 수 있을 때 만이 비로소 진정한 앎이 가능하다.

가장 가까운 가족을 이해하는 일은 더욱 그렇다.

서로의 자라온 날들에 대한 상처와, 방황과, 좌절과, 그에 대한 결핍을 모두 알게 될 때라야 참으로 가족이라 할 수 있는 가족이 될 수 있다.



소설 속 범우는 마흔아홉에 자살을 선택한 어머니의 죽음 앞에 그녀를 평생 원망하며 용서하지 못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자살 계획에 실패하고, 이후 대장암 판정을 받게 되면서 어머니의 자살 이유가 궁금해진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AI로 복원하여 대화를 나누며, 그녀의 어린 시절로부터 성장기, 처녀 시절, 결혼 생활의 흔적과 하나씩 만나면서, 과거에 대한 오해와 상처를 차츰 치유하게 된다.



책에 이입되면서 나는 범우와 그 어머니의 입지에 따라 번갈아 체화되고 전이되었다. 마치 내 삶의 반성서라도 보는 것처럼.

부모가, 자식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진심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가장 힘든지. 진심으로 모르고 산 세월에 진실로 미안해하면서...




자식에게 있어 부모는 어떤 존재일까. 부모는 지극히 당연한 현존재-즉 과거가 없이 오로지 현재로만 ‘나’에게 의미를 갖는 존재-로 여겨짐이 모든 자식들의 현주소가 아닐까.

현재나 현재형이 전부인 탓에, 자식에게 부모의 과거는 그저 부모의 몫이고, 듣고 싶지도 않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치부될 뿐인.

그래서 내가 그러했듯이 어느 시대나 자식이란 뒤늦은 반성과 후회를 쏟아낼 수밖에 없는 어리석음을 너나없이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 어쩌면... 정작 부모인 자신마저도 풀지 못한 매듭이 있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왔을지도 모르는- 앞으로만 달리는 시간을 쫓아가다가 시간의 먼지에 덮이고 묻힌 자신의 과거는 저만치 밀쳐둔 채 말이다.


아니 아니 그것보다, 존재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란 서로를 열고자 하는 노력과 그 절묘한 타이밍이 함께 맞아떨어져야 하는 일이어서, 우리 모두는 차라리 이런 노력을 미리 포기하고 묻어버린 채 사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우리는 너무 바쁘게들 살아가고 있으므로.



작가는 책을 통하여 한 개인으로써, 한 인격으로써의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금 설정하고, 오래 묵고 단단히 굳어버린 관념을 쪼개어 새로운 인식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독자로서의 나는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심각한 과제 하나를 떠안게 되었다.




기억되는 구절들...


*아무리 미숙한 엄마라도 자식을 원망하지는 않아(96쪽).


*없을 때는 잘 살아도 낳은 뒤에는 없으면 못 사는 게 자식이더라. 자식을 족쇄로 여기는 부모는 아무도 없어(169).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 한 공간에 오랫동안 부대끼며 살아도 속을 알 수 없는 게 가족이라는 것.

그래서 가족과 함께 있을 때 더 외로울 수 있다는 것(225).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 제대로 이별하지 못한 탓이야. 미워하는 감정이 남아 있어도, 이별한 이유를 몰라도 제대로 이별한 게 아니야.

이제라도 제대로 이별하려면...(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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