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엄마가 아이에게 어떤 행위를 요구하고 싶다면 ‘해라체’를 사용하는 것은 금해야 한다. 해라체만큼 마음을 거스르게 하는 어투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서 상대방을 처음 인식하기 시작할 때 갖게 되는 첫 감정이 거스르는 욕구라고 하지 않는가.
일방적으로 지시를 받게 되면 일단 방어기제부터 생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우스운 상상이지만 인간의 첫 조상이라고 하는 아담에게, 하나님이 사과나무를 ‘먹지 말라.’하지 않고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에둘러 말씀하셨다면 아마도 반역하
지 않고 순종하여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지나 않았을는지.
대화에서 해라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두 가지 점
에서 유익하다. 하나는 직접적인 요구가 아니어서
아이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이 처해진 상황에 대해서 선택
할 권리가 인정되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솔직히, 그리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이 개발된다.
이때 ‘싫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면 두, 세 가지 이유
를 말하도록 하는 것을 잊지 말 것. 그리고 이유가 충분하다면 수긍해 주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에는 한 발자국 양보해서 다시 묻는 여유를 보여야 한다.
새로운 도전이나 행위를 필요로 할 때, 소극적인 아이들이 보이는 가장 흔한 말은 ‘못해요’,‘싫어요.’이다. 이때‘못해요’하는 말은 ‘도와주세요.’로, ‘싫어요.’하는 말은 '한 번 해 볼게요’ 라는 말로 반응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해보기도 전에 ‘못해요’를 앞세우거나 ‘싫다’
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므로.
언어는 인식되어진 사고의 산물이다. 따라서 무심
히 사용하는 언어에도 일찌감치 관심을 가지는 것
은 백 번 유익하다. 특히, 자녀를 잘 키우고 싶다면 언어를 처음 가르칠 때부터 자신과 아이가 사용하는 어휘에 관심을 가질 일이다.
얌전한 아이에게는 기회를 잡아 '씩씩하다’는 칭찬으로, 별난 아이에게는‘참 착하다’는 말로, ‘그것도 못하니?’가 아니라‘그건 할 수 있잖아’
라는 말로 부족한 부분을 언어로 채워주어야 한다.
이 외에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언어 속에 녹아 있는 우리의 편향된 사고와 모순점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공짜로!
말씨 하나만 바꾸어도 내 인생이, 그리고
남의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이 수지맞는 장사 앞에서, 잘못된 언어를 제대로된 언어로 바꾸어 쓰는 관심은 기꺼이 가져봄 직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