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선생님께 드리는 촌지가 완전히 사라졌을까? 이젠 성인이 되어버려서 염려할 일도 없지만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을 보면 가끔씩 궁금해지기도 한다.
내가 자랄 때 우리 어머니의 촌지는 일 년에 한 번. 양동이 한 가득 사과를 담아 교실로 보내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복감에 나는 들뜨곤 했다. 그 느낌을 내 아이에게도 안겨 줘야지.
촌지 자체가 나쁜 의미는 아닐 게다.
내 아이를 하루 중 가장 많이 돌봐주고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얼마나 고마운가. 더욱이 가정에서 하나 둘 키우는 것도 힘든데, 이삼십 명을 한꺼번에 돌보는 그 고충이야 오죽하겠는가?
나는 감사함으로 때에 따라 촌지를 전달했지만 슬쩍 끼워주는 법은 없었다. 내 아이만을 잘 봐 달라는 의도가 아니었으므로 대부분 반 아이들 앞에서 전달했다. 학급을 위해 써달라는 인사말과 함께.
그러나 가끔씩 더 나가는 선생님도 있었는데 대놓고 달 봉투를 요구하면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내 아이가 특별한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수업 시간에 내 아이 귀에만 대고 따로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아니,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못할 짓이었다.
그런 선생님 류를 만났던 어느 한 해. 나는 이 불편한 진실을 아이에게 솔직히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래도 상급 학년이니 말귀는 알아들으리라 여겼으니까.
아이는 괜찮으니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했고, 나는 힘들면 엄마한테 솔직히 말하라고 일러두었다.
그 한 해 동안, 아이는 별 다른 투정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탐탁잖게 여기는 선생님의 표정을
왕 무시해 버린 채, 촌지는 내 의지대로 감사하고 싶을 때만 했다.
한 학년이 끝날 무렵 선생님이 말했다.
"아이가 엄마한테 다 전달했는지 모르지만
제 밑에서 고생 꽤나 했습니다.
이다음에 크면 신문 한 페이지에서 발견되는 여성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아! 촌지가 괴물 선생님을 만들지 않았다면
감사함으로 오래오래 기억되었을 텐데...
그 한 해, 선생님과 나 사이의 밀당으로 점철된
힘 겨루기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선생님의 간 큰 솔. 직. 함. 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