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기행

둘째 날

by 김두선

#옛길박물관에서


괴나리봇짐 속에서 꺼내어진 짐들이 길에 얽힌 사연을 굽이굽이 풀어놓고 있다. 그 옛날, 영남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은 세 갈래 고갯길이 있었는데 선비들이 유독 가장 험한 고개인 문경

새재를 고집한 징크스는 흥미롭다.


추풍령으로 넘어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으로 넘어가면 죽죽 미끄러지는데,

문경새재를 넘어야만이 좋은 소식을 듣게 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니 말이다. 문경의 옛 이름은 문희이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소식을 듣는 곳이란 뜻에서는 변함이 없다. 나도 문경 땅을 밟게 되었으니 어떤 좋은 소식을 곧 듣게 될까. 아무튼 사람이나 사물이나 이름을 브랜드화하려면

그 소리값부터 좋고 볼 일이다.


대동여지도 앞에 섰다. 목판 인쇄본으로 세로 6.7 , 가로 3.8미터의 길이로 수록되었다.

남북 120리, 동서 80리 간격으로 지도를 작성, 다양한 지리 정보를 현대 지도와 같이 기호로 표시한 다음, 이를 22권의 책으로 나누어 병풍처럼 접어 만든 분첩식 지도이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이처럼 거대한 대작이라는 점. 그리고 너무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사실 앞에 사뭇 놀라고 감탄했다.


#혜국사


박물관에서 나와서 옛길을 오르기 전, 오른쪽 비탈길 쪽으로 '혜국사' 가는 팻말이 보였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문경 마을이 장관이라는 정보 입수. 평소 길 걷기를 좋아하는 터라 2킬로 미터는 주저할 일이 아니라 여기며 곁길 들어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착오였다. 거리 상은 그리 먼 곳이 아니지만 해발 오백 미터의 가파른 오르막만 연이어진 길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한참을 헐떡거리며 올라갔지만 얼마를 더 가야 목적지에 도달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되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난감한 시점쯤에서 다행히 '혜국사 1 킬로미터' 지점을 알리는 안내판을 발견했다. 다시 용기를 냈다.


천년고찰 혜국사. 청량한 목탁소리와 함께 스님의 불경 외는 소리가 대웅전 마당과 주흘산 자락을 휘돌아 울려 퍼졌다.
숲. 숲. 숲.
맨 꼭대기 산신당에서 내려다 뵈는 풍경을 보며 누군가가 가을 단풍 산은 얼룩덜룩 얼룩진 것 같아 싫다는 말이 떠올랐지만 나는 초록의 단일함이 오히려 따분해 보일 만큼 주위는 초록 천지였다.


#옛길 걷기

옛길 입구에는 선비 공원이 있어, 선비들의 정신을 기린 시조들이 둥글넓적한 돌비마다 새겨져 있다. 또 각 지방의 아리랑 가락을 새겨둔 아리랑 기념비도 즐비하게 서 있어 문경이 아리랑 진원지임을 뽐내고 있었다.


아리랑 곡조를 뽑으며 문경새재를 넘으면 좀 더 수월하게 오를 수 있을까? 수다를 떨며 1 관문 조곡관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2 관문 주흘관 입구에서 주저앉은 채, 3 관문인 조령관은 가보지 못한 길로 남겨두고 말았다.


중간중간 바라보며 쉬었던 폭포, 주막집, 정자, 계곡물.... 그 장관인 풍경 앞에서 딸과 나는 한 폭의 산수화 속으로 퐁당 빠져 들었다.


마지막 왕건 드라마 세트장 구경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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