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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국 Feb 17. 2019

숙제, 주입식 교육과정

8. 삶과 단절된 공부와 숙제, 교육과정 

시험과 검열, 상(賞) 등은 인격의 발전을 저해할 뿐이다. 학식을 자랑하는 자들만이 책을 통한 배움만이 교육이라고 주장할 뿐이다. 책이란 교육 자료로 그다지 좋지 않다. 물론 어린이들도 읽고 쓰고 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도구, 연극, 음향, 색깔, 자유 등이 더 중요한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강요되는 학교 숙제들이란 대개 어린이들의 시간과 열정, 인내 등을 낭비시킬 뿐이며 이런 숙제들은 어린이를 겉늙게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수업 시간마다 교사들이 바뀌는 것이다. 교사들에 적응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교사들마나 의욕에 넘쳐 숙제를 내준다. 과목마다 주어지는 숙제 때문에 아이들은 집에서 쉴 틈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초등학생 때에는 전담 교과 교사가 있는 과목 외에는 담임교사가 지도하기 때문에 숙제의 양이 조절될 수 있었다. 하지만, 교사들이 과목마다 바뀌는 중학생이 되고 보니 과목마다 주어지는 숙제가 부담이 컸다.(내가 교단에 선 1983년에는 전두환 군부 정권에 의해서 7•30과외금지조치(1980년 7월 30일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군부세력이 취한 조치)가 이루어진 상황이어서 학생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고 있었기에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가 집에서 공부하게 하는데 원인을 제공했다.) 이들 숙제란 삶과 동떨어진 지식을 습득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부모들은 그렇게라도 숙제를 내주는 교사들이 가정에서 학습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학급회의 때에 아이들이 내놓는 기타 안건이 ‘숙제의 양을 줄여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어려움을 이해하였지만, 달리 방도를 내놓을 수 없었다. 인터넷, 컴퓨터 등이 없는 당시에 숙제란 교과서를 중심으로 참고서, 자습서에 의지해서 수업과 관련한 내용을 뒤적이며 조사하거나 제시된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들은 집에서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 자체에 위안을 받을 뿐, 그들이 하는 공부가 삶에 의미가 있는지는 헤아리지 못하였고 나 또한 그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숙제 때문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1983년 5월쯤, 나는 퇴근 시간이 지난 후에도 밤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서 실험활동보고서를 체크하는 일이 잦았다. 교사들이 다 퇴근 한 교무실에 혼자 남아서 9시, 10시까지 이, 삼백 명이 제출한 보고서(한 학급에 7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었고, 하루에 3~4시간 정도의 실험활동이 있었다)를 체크 해야만 했다. 내가 수업을 담당했던 아이 몇 명이 그런 상황을 알고, 집에 갔다가 공부할 것을 가지고 학교에 와서 내 곁에서 공부를 하고 가면 안 되겠는지를 물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수업을 마친 후 학교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이(당시에는 숙제를 하느라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가는 아이들의 수가 꽤 있었다. 공부방을 갖지 못한 신림7동 달동네에서 사는 아이들이 꽤 있기도 했다.), 도서관이 문을 닫자 내가 실험보고서를 체크하고 있는 교무실로 몰려 내려와서 공부를 하겠다고 했고, 나는 이미 여러 날 내 옆에서 공부하던 두 명의 아이가 있는 터인지라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밤 9시쯤에 교장이 교무실에 들이닥치더니 불호령을 내렸다. 과외 금지가 되어 있는 상황인데, 혹시라도 과외를 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 당장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라는 것이다. 당황하면서 아이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서 생각하니 억울했다. 어떻게 해서 도서관이 끝난 후에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날따라 교무실에 몰려와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교장이 들이닥쳐서 죄를 지은 교사인 양 호통 치면서 나를 꾸짖고 아이들을 내쫓았는지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교무실은 선생님들이 근무하는 공간인데 아이들이 남아서 공부하는 것은 도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아이들이 교무실에 남아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이유였다면 이해될 법 했지만, 과외 금지 조치를 위반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으니 아이들을 남겨두지 말라는 이유는 더욱 납득하기 곤란했다.     

 1983년 겨울이 다가오는 11월의 어느 토요일이었다. 3교시 수업이 과학실험실에서 진행 중이었다. 교장실에서 과학과 회의를 진행하니 수업 중에 회의에 참석하라고 했다. 회의 내용은 과학교육우수학교를 대상 학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내가 근무하던 남서울중학교가 최종 후보가 되어 월요일에 장학사들이 과학교육 활동 내용을 실사를 하러 오니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맡겨진 것은 과학실험실 청소와 교구 정리를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실험 준비를 하고, 실험 기구를 정리하는 업무 담당자(오늘날 과학실무사)가 없었다. 교장은 일요일 10시에 과학실험실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니 곧 수업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다음 시간에 또 실험실에서 수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실험을 제대로 해보고 싶은 아이들은 다음날인 일요일에 오전9시까지 학교 실험실에 와서 실험을 해보라고 했다. 

 다음날인 일요일 오전 10시, 실험실 정비를 도와줄 몇몇 학생과 실험을 하겠다는 학생 몇 명이 실험실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교장이 실험실에 들어오더니 “왜 아직도 실험실 정비가 이렇게 밖에 안 되었느냐? 내가 10시에 온다고 했으면 그 전에 실험실 정리가 끝났어야 하는 것 아니냐?”하고 호통을 치면서 실험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내쫓았다. 나는 전날 수업시간에 회의를 한다고 실험을 못해서, 실험하고 싶은 아이들은 실험실에 와서 실험을 하게 했는데 왜 아이들을 내쫓느냐고 항의를 했다. 아이들이 실험을 한다고 해서 실험실 정리를 하는데 방해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교장은 여러 아이들이 지켜보는 중에 신참 교사의 항의에 당황하고 교장실로 돌아갔다. 결국, 실험을 하러 온 아이들은 실험을 하지 않고 험한 상황을 지켜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화가 난 상태에서 실험실 정리를 했다. 11시쯤 되었을 때, 교감 승진을 앞두고 있던 과학부장이 실험실에 들어와서 “교장님께 사과를 하러 교장실로 가자.”고 했다. 나는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말을 뿌리쳤다. 시간이 흘러 오후 3시쯤 되어서 다시 과학부장이 실험실에 찾아와서 “교장이 잘 해보자는 말을 하고 싶어 한다. 사과를 하지 않아도 되니 교장실에 가서 교장을 만나자.”고 했다. 교장을 만나니 악수를 청하면서 “잘 해보자.”고 한다. 미안하다는 사과는 없었다. 상이라는 게 아이들을 위한 교사의 교육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한참 후에야 알게 된 것이었지만, 그러한 표창이 승진과 관련되어 있었다. 상이라는 것이 정말로 교육활동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였다면 공부를 하겠다고 일요일에 학교에 찾아온 학생들을 내쫓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학교에 주어지는 상이라는 것이 교육활동을 어떻게 포장했느냐에 관한 것이며, 승진과 관련되어 있다.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상들 역시 아이들이 가진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게 하는데 작동하지 않는다.     


 교과서에는 인간의 성격과 사랑, 자유와 판단 등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 결과 머리와 가슴은 항상 서로 떨어져 있게 된다.

많은 교육학자들은 어린이에게 ‘무엇’을 주입시키기만 하면 될 뿐, 어린이가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또한 가르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이 그 외에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오늘날의 학교가 인간이라는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 구실을 하는 한 계속 그럴 것이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또는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모든 국가에는 정확하게 잘 짜여진 학교 제도들이 있다. 그러나 학교의 모든 훌륭한 실험실과 실습 공장들은 아이들의 정신적인 피해와, 부모나 선생 또는 우리 문명의 강제적인 성격 때문에 생겨나는 사회악을 이겨 나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교육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과정을 마련하는데 학생들의 의견은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정부에서 마련한 국가교육과정에 근거하여 과목 수, 시간 수가 정해져 있고, 그것에 따라 학교 교육과정이 운영된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 교과 수업은 말할 것도 없고, 교과 외에 마련된 여러 활동에서도 아이들의 참여는 제한되었고, 제도와 교사들에 의해서 준비된 활동만 아이들에게 제공되었다. 교사들이 세운 동아리 활동 계획에 따라 학생동아리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그런 이유로 학생들의 가위•바위•보에 의해서 동아리 구성원이 결정되는 것을 보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다. 1980년대에는 글쓰기, 표어그리기, 포스터 그리기와 같은 행사가 많았다. 아이들에게 어떤 생각을 주입하기 위한 도구로 흔히 사용하는 것들이었다.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주제들이 아이들에게 제시되었고, 아이들은 요구받은 대로 생각을 따라가며 글을 짓고, 그림을 그렸다. 그러는 동안 그런 활동을 고안해낸 사람들의 요구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는 동아리 활동을 조직할 때, 학생들이 원하는 동아리 활동을 학생들이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학교에서 생겨나고 있다. 태릉중학교에서도 2017년학년도에 학생들이 원하는 동아리를 스스로 조직하게 하여 전체 동아리 중 삼분의 이 정도가 학생들의 자발적인 활동에 의해 만들어졌다. 일정 기간 동안에 학생들이 10명 이상 모이고, 동아리를 지도해줄 교사를 찾아내면 조직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동아리들은 대부분 학생들 주도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고, 활동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그런 동아리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동아리를 교사들은 조직해서 동아리를 운영하였다.

 또,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서 학습 내용과 형식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진행될 때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도 나타나고 있다. 2016년에 태릉중학교에서는 국어과, 미술과, 체육과, 음악과가 협력하여 뮤지컬을 만드는 수업에서 해당 교과 교사들의 기획이 학생들의 모니터링을 거쳐 완성되어, 교육과정이 운영되는 사례가 생겼다. 통합교과 형식으로 진행된 뮤지컬 수업은 매우 수준이 높은 작품들을 무대에 올렸다. 아쉬운 것은 그 작품들을 학교 밖, 마을로 내보이려고 했으나 교사들의 의지의 한계로 마을로 내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또, 국어과에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서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을 정리하여 대자보를 써서 붙이게 하고, 붙은 대자보에 의견을 첨부하게 하는 수업을 하는 예도 나타나서 과거와 같은 교과서에 갇힌 수업이 아닌 교과서 밖으로 나간 수업이 나타나기 하였다. 사회과에서는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각종 집회 현장에 방문해서 내용을 알아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게 하는 수업도 나타나고 있다.

 혁신학교를 중심으로, 일부 일반학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변화들은 학교 교육이 교과서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던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고 있으며 사회악을 이겨내는 힘을 기르는데 소용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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