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삶에 대하여 1
기자 생활을 하다 전혀 경력과 상관 없는 대학원에 간다고 했을 때 가족 뿐 아니라 직장 동료, 교수님, 이미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쪽 일을 20년 넘게 한 외삼촌까지 모두 뜯어말렸다.
언론정보학이라든지, 미디어 관련 학위를 따는 것도 아니고
야간 수업이 있어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3년제 대학원을 왜 굳이 서른이 다 돼서 가느냐는 얘기였다.
다니던 방송사에 사직서를 내고 2018년 여름방학에는 생활비를 벌어야 겠단 생각에 잠시 휴학을 하고,
다시 회사원이 됐다. 그것도 집에서 25분 거리인 모교 홍보팀.
귀하디 귀한 그 자리(여름방학에 무려 3시에 퇴근이라구요!)를 놓치고 싶지 않는 맘이 생각보다 컸다.
100만 번 고민하고, 모교 홍보팀 분들과 바이바이 하고, 대학원 기숙사에 다시 들어가던 날의 작열하던 여름의 열기가 기억난다. 일을 오래하지 못해 민폐를 끼쳤다는 송구함에 롤케이크를 사서 팀장님들께 다시 한 번 인사를 드리고 회기역에서 수원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돈 버는 일을 싹둑 일상에서 잘라내고
'경제적 활동'과 '경력'을 위해선 하등 쓸모 없어 보이는
순수 신학을 공부 하러 가는 여자의 뒷모습은 생각보다 처량하게 느껴졌다.
신대원의 1년 의무 기숙사 생활은 예상보다 100배는 힘들고 고달팠다.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해서 새벽기도를 필수 참석 해야 했고,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50분까지 빼곡한 수업 스케쥴은 마치 고등학교 생활을 연상케 했다.
등록금을 겨우 마련해 학비를 내면 책값, 생활비, 교제비 등등 돈 나갈 일은 초침처럼 빨리 돌아왔다.
모아 놓은 돈은 1년도 안 되어 바닥을 드러냈다.
먹고 살아야 하니 학교 수업이 적은 금요일이나 토요일을 이용해 프리랜서 기자 일을 하며 용돈을 벌었다. 전 직장에서 함께 일한 선배가 감사하게도 일거리를 종종 주시고, 원고료도 업계 평균보다는 높게 쳐주셔서 공부하다 출출하면 뛰쳐나가 샌드위치라도 사먹을 수 있는 여유가 감사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기자의 글쓰기와 학문적 글쓰기는 매우 달랐다.
스스로 글을 잘 쓴다 생각한 적 없었지만, 적어도 소논문 쯤은 조금만 연구하면 금방 익숙해지겠지? 라고 생각했다. 엄청난 오만이었다.
공부 머리도 굳어 있어, 영어 및 전공서적을 소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혼할 상대를 만났는데 혼수도 내 성에 찰 만큼 준비하지 못했다. (공부하느라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
그럼에도 언론사를 그만두고, 신대원에 진학해 목회학 석사를 딴 사실을 후회하지 않는다.
평생 글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내 꿈을 키우는 토양과 거름으로 삼을 수 있었던 3년 반의 대학원 기간.
그 과정을 거치며 전 남친과 연애를 시작했고, 전 남친은 현 남편이 되어 4년 넘게 내 인생의 반쪽으로 동행하고 있다.
과제 하느라 지겹도록 책을 읽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쉽게 풀어주기 위해 A4 2-3장 분량의 원고를 4년 동안 작성했다. 이 경험 덕분에 최근 다시 기자 일을 시작하면서 적응기간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어떤 시간이든 무의미한 시간은 없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스스로 져야 하지만, 그 선택이 한 발 후퇴를 의미하는 시간처럼 보일 지라도 '그로 인한 경험'은 남는다.
기자와 신학을 배우는 학생. 너무 안 어울리는 두 단어지만 '글쓰고 읽고 그리고 말하는 써미'를 빚는 큰 틀이었다고 믿는다.
다시 한 번, Thanks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