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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르다 Jun 04. 2024

모유와 분유 사이에서 서성이다

완모하고 싶었던 엄마의 이야기

제왕절개 3일차, 처음 아가에게 젖을 물렸던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신생아실로 내려가 간호사 선생님의 지도 하에 아주 작은 입을 겨우 벌려 젖을 힘겹게 빨던 너의 모습이, 나오지도 않는 젖을 살겠다고(?) 사력을 다해 빠는 걸 보고 엄마는 아가한테 많이 미안했다.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엄마 젖을 어떻게 찾아 먹는지, 우리 아가가 생후 3일차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귀엽고 예뻤다.


그러나 초유를 먹일 땐 아가한테 내내 미안했다. 유축을 해도 5ml 겨우 나왔던 4일차 새벽... 신생아실에 유축한 모유를 가져다 드리며 민망할 정도였다.


완모를 하고 싶었던 나는 좌절감을 느꼈다.


하필, 같은 시기에 산부인과에 있던 산모분이 유축하러 가면 젖병 두 개를 꽉 채워 가져 오실 만큼 양이 많았어서 "왜 나는 3-4시간 간격으로 유축하고, 직수도 새벽 12시-1시까지 하고 잠드는데 이렇게 젖 양이 적을까?" 서글퍼서 울기도 했다.


산후조리원 팀장님이 유명한 가슴마사지 전문가셔서 다행히 두 번의 마사지 후에 양이 늘었다. 조리원 퇴소할 때 쯤엔 아침 첫 유축양이 80ml까지 나왔다. 두유, 미역국, 국물음식, 물을 많이 섭취하려 노력했다.


작게 태어난 아가는 여전히 한 쪽만 물고 잠들거나, 먹다가 잠들거나 그래서 조리원에서부터 혼합수유를 했다. 아기가 태어난 지 삼 주가 좀 넘은 시점 1차 영유아검진 땐, 몸무게 주의가 떠서 산양분유로까지 분유 갈아타기를 하며 아기 몸무게를 늘리는 데 애를 썼다.


모유보단 분유가 살이 잘 붙기 때문이다. 원랜 직수와 유축해서 먹이는 비율을 7 분유를 3으로 가지고 갔는데, 5:5에서 4:6 정도로 조정했고, 밤-새벽엔 엄마인 내가 잠이 너무 부족해 일부러 분유로만 먹였다. 50일부터 슬슬 자는 시간이 4-5시간으로 늘어나더니 60일 기점으론 6시간도 잔다. 그래서 요즘엔 첫 수는 모유로 먹인다. 그 때가 새벽 네 시 반이든 여섯시든 말이다. 물론 막수는 무조건 분유로 든든하게 준다.


아기가 40일쯤 됐을까, 산후관리사 기간이 1주 남은 그즈음 허리가 지독하게 아팠다. 모유수유를 하다 보니 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발목과 무릎, 손목까지도 너덜너덜해져 주 2-3회 한의원을 가고, 마사지도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집에 있는 예전에 처방 받아 놓은 마약성진통제를 겨우 하나 찾아서 먹었다. 이렇게 센 약을 먹으면 당연히 모유수유를 멈춰야 한다. 약을 먹고 24시간이 지났을 때 유축한 후 모유를 먹이면 된다고 산부인과 의사선생님이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하다 보니 직수가 매우 편해져서 유축을 최대한 안 하고 싶었는데, 직수를 못 하니 유축을 따로 해서 젖몸살이 오지 않게 해야 했다.


남편은 허리 아파서 고생하는 나를 보고 얼른 단유하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이라도 더, 적어도 백 일까지는 모유를 주고 싶었다. 원래는 10-11개월까진 완모로 가고 싶었던 목표가 있었기에 쉽게 타협이 안 됐다.


일반 약국에서 파는 진통제는 소용이 없고, 마약성진통제를 매일 먹을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마취통증의학과에 가서 두 번의 주사를 맞았다. 별 차도가 없어 큰 병원으로 가 신경주사를 맞고 약도 처방받아 왔다.


오랜만에 신경주사를 네 군데 맞으니 아팠다. 그래도 그걸 맞고 난 하루는 허리가 살 만했고, 육아도 더 즐겁게 할 수 있었다. 허리와 골반에 느껴지는 통증이 사그라 들었으나 정작 수유는 할 수 없었다. 수유부가 먹을 수 있는 약은 제한적이고, 타이레놀은 듣지 않기 때문에 요통이 심하게 올라왔을 때 신경주사를 맞기로 결정했다. 2주 간격으로. 병원 처방 약을 먹으면 유축한 걸 다 버리는 수밖에 없다. 지난 주엔 월 주사, 수요일 주사, 목요일 약 복용으로 월화수목을 거의 모유를 주지 못했다. 월요일 첫 수유를 직수로 주고, 수요일 주사맞기 전에 주고. 나머진 중간중간 유축을 해서 그대로 버렸다. 아까웠다, 버려지는 모유가.


한 달 정도 동안 허리때문에 고생하면서 지난주 토요일까지도 단유를 해야 하나 많이 고민했는데, 아직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아기가 젖을 빠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기도 하고, 배가 고파 자지러질 듯 울 때 젖병에 분유를 탈 필요 없이 편하게 모유를 먹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포기하고 싶지 않다. 딸꾹질을 자주 하는 신생아에게 젖을 물리면 금방 딸꾹질을 멈춘다. 무엇보다 모유는 아기한테 좋다. 분유도 물론 요즘에는 매우 잘 나와서 완분 아가들이 더 포동하게 잘 자라기도 한다.


이건 아이를 얼마나 더 사랑하느냐 덜 사랑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완모를 하든 완분을 하든, 혼합을 하든 모든 엄마는 아기를 사랑으로 키운다. 분유도 얼마나 할 일이 많은지, 젖병을 제 때 씻지 않으면 급할 때 아기에게 줄 맘마가 없다. 열탕소독도 주기적으로 해줘야 한다. 젖꼭지는 단계별로 언제 바꿔야 하는지 체크해야 하고, 배앓이가 오지 않도록 트림도 신경써서 마쳐야 하고, 오히려 할 일은 훨씬 더 많다.


젖병도 얼마나 비교하며 골랐는지, 모든 엄마들이 그러할 것이다. 나는 분유나 유축수유할 땐 닥터브라운 유리젖병과 더블하트 PPSU 젖병을 섞어서 쓰고 있다. 확실히 닥브로 먹이면 아기가 수유 후 덜 불편해하는 것 같다. 다만 설거지가 좀 귀찮다. 더블하트는 모든 아가들이 잘 무는 젖병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았다. 아기가 안정감 있게 맘마를 먹는다. 유리젖병보다 가볍다.


모유수유를 하고서부턴 라면을 먹지 못했다. 매운 걸 못 먹어도 라면은 '신라면'을 좋아하는데 매운 음식을 먹으면 아기한테 고스란히 전해져서 끙아를 할 때 아가가 힘들다고 한다. 또, 모유를 '하얀 피'로 부른다고 하던데, 그래선가 한 번 직수를 하고 나면, 배가 엄청 고프다. 체력적으로도 부친다는 느낌도 받는다. 그래도 묘한 중독(?)이 있다. 분유는 아기가 얼마 먹는지 알 수 있어서 명쾌해서 좋고, 트림을 길게 시켜야 한다는 점은 힘들다(점점 아기가 무거워지고 있기 때문).


혼합수유가 엄마 입장에선 제일 손이 많이 간다던데, 아가를 위해서라면 이 쯤이야 뭘 못 하겠어? 란 생각이 든다. 6개월부턴 이유식을 하고 말을 제법 하고 잘 걸을 시점엔 엄마 아빠가 먹는 밥을 같이 먹게 될 텐데, 모유든 분유든 먹는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끝날 것 같다. 이 때를 추억하며 그리워 할 날도 언젠가 있을 테니 이 시기를 즐겁게 잘 누리는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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