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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무 Nov 03. 2021

내가 독립서점 창업을 포기한 이유(변명)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품고 산다는 것은 머리 아픈 일이다. 풀리지 않는 문제, 도저히 답을 알 수 없는 사안은 감당하기 어렵다. 그와 비슷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이루지 못한 꿈이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임에도 마음에 남아 자꾸만 나를 괴롭힌다. ‘독립서점 창업’이 내게는 그런 존재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게 독립서점은 타인의 꿈이었다. 누군가가 독립서점 사장이 되고 싶다는 말을 했고, ‘그게 만약 나라면 어떨까’를 고민했다. 아, 이건 해야겠다.라고 생각이 들어 여러 서점을 찾아다녔다. 타인의 욕망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 하기에, 금세 빠져든 것이다. 독립서점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했다. 친한 형이 같이 쓰자고 내어준 작업실이 있었다. 같이 사용하려고 공사도 마쳤고, 공간도 나쁘지 않았다. 거의 나 홀로 쓰고 있었기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문득 명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욕망이 아니라 진짜로 내가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스스로 확신하고, 타인에게도 자신 있게 말하려면 이유와 명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런 이유가 아닌 충분하고도 타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충분하고도 타당한 이유라는 것. 내게는 너무나 중요하다. 무엇을 하건, 보건, 즐기던 중요한 점은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조금 복잡하고 어렵게 사는 것 같기도 하다. 독립서점을 하고 싶으면, 그냥 독립서점을 하면 되는데 명분은 무슨 명분인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렇게 살아와서, 관성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명분이라는 것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꿈꿔오던 삶과의 결탁’이다. 쉽게 말하면 하나의 결로 이어진 맥락 같은 것이다. 나는 삶의 맥락을 찾는 과정을 한 사람의 퍼스널 브랜딩과 연결 짓는 것을 좋아하는데,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독립서점 창업을 하고자 했던 이유가 타인의 욕망이었으나, 나의 욕망이 된 이상 내 삶의 맥락 위에 얹혀야 한다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미술을 전공한 예술가가 독립서점을 차리는데 모든 큐레이션이 경제 관련 책이라면 어떨까. 어울리지 않는다. 더욱이 신뢰가 가지 않는다. 미술에 전문성을 가졌다면 미술 전문 책방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내가 배운 것, 느낀 것을 하나로 묶어내는 독립서점. 결국 내가 원했던 것은 지금껏 살아온 내 삶을 증명하는 것 아니었을까.


본격적으로 서점을 브랜딩 하기 시작했다. 삶을 돌아보니, 영화를 뗄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술 관련 서적을 모아둔 서점을 차려야겠다 싶었다. 그때는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라 미술관에서 나온 책들을 큐레이션 하고, 영화 관련 서적을 가득 채운 독립서점이라면 공부하면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브랜딩에 대해 고민하면서, 창업가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왜 꼭 예술이어야 해?’라고 물었다. 예술이 삶의 필수 영역이 아니라 생각하는 경영인에게, 예술 전문 서점은 구미가 당기는 아이템이 아닌 것이다. 선배는 한 발 더 다가갔다. ‘예술이 좋은 건 알겠는데, 예술에 취해선 안돼’ 정곡을 찔렸다. 예술 서적을 채워놓고 예술가인 척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선배는 일단 해보라고 조언해주셨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일단 해보라고 그리고 다시 점검해보자고.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인테리어까지 마쳤었다. 책을 사입하는 것은 마지막에 할 생각으로 공간부터 채운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허접할 수준이었지만, 예산 안에서 만들 수 있는 최선이었다. 고민의 과정을 지나 서점 이름과 콘셉트도 나왔다. 책을 큐레이션 하는 방식까지도 정했었다. 그러나 책을 사입하지 않았다. 작가들에게 메일을 돌리고,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만들고 멈추었다.


이 부분을 쓰려고, 앞선 이야기가 필요했다. 독립서점을 창업하지 않은 이유. 


솔직하게 말하면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 있는 체했다.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하고 다니면, 내가 진짜로 해내리라 믿었기에 정말 많이 말하고 다녔다. 그러나 속으로는 자신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아직도 내게 서점은 어찌 되었냐 묻는다. 민망할 따름이다. 그 당시 때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직 제 때가 아니라고’ 지난 글에서도 밝혔었지만, 고민의 과정이 꽤나 길었다. 근 2년을 고민했다. 고민을 시작한 날의 나와 창업을 포기한 날의 나는 분명히 같은 사람이지만 생각이 달랐다. 고민이라는 과정을 지나 사고와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내 인생에 고민의 과정이 중요한 시기로 남아주었다.


사실 과정을 겪으면서, 서점은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책은 소재가 되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던 이유는 서점의 브랜딩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들고자 했던 서점의 콘셉트는 ‘모두에게 이름이 있듯이, 모두에게 소명이 있다’였고, 이름이 있다는 유명에서 출발하여 ‘기명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확장했다. 그리고 소명에 관한 책들과 청소년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가득 담아둘 계획이었다. 청소년이라면 언제든 와서 쉬어가도 괜찮고, 책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내가 존경하는 어른들을 찾아가서, 청소년들을 위한 책을 큐레이팅 해달라 부탁드릴 심산이었다. 내 삶의 맥락에서 소명은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었고, 예술보다 더욱 값진 가치였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소명. 그 한 마디가 내게 와닿았다.


내게는 소명이 있다. 그 소명은 크거나 작은 꿈의 문제가 아니며. 타인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내게만 주어진 특권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주어진 특권인 셈이다. 모두에게 주어진 소명이 있다는 것이다. 놀라운 소식이었고 기쁜 소식이었다. 삶을 가치 있고, 진취적으로 살아갈 ‘충분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놀라운 동기부여였다. 내게 소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지난 삶을 돌아보면서 ‘청소년을 돕는 것’이 내 소명이라 생각했다. 그 시작으로 서점을 준비한 것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소명이 있다고 널리 알리려는 브랜딩을 한 것이다. 처음에 없던 자신감도 생겼고, 잘 만들어서 지방으로도 내려갈 계획까지 세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소명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선배는 소명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소명은 그대로 있지만 삶으로 나타나는 모양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내 생각에 청소년을 돕고, 문화 소외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소명인 것 같은데 그 소명이 세상에 나오는 모양은 서점이 될 수도 있고, 사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점이 수단이 되고, 책이 소재가 되었던 이유이다.


나는 영화와 언론을 공부했다. 그런데 영화인이 되지도 않았고, 언론인이 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지난 공부의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내게 쌓여있다. 그리고 주변에 영화인들과 언론인들이 있다. 그 과정을 통해 배운 것, 느낀 것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어떻게든 청소년들이 더욱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마지막 고민에서 서점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정확한 이유는 더 고민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더욱 확실하게 소명을 세상의 모양으로 나타낼 수 있을까.


진로 고민은 끝이 없다고 한다. 평생을 해도 고민되는 것이 진로라고 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소명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소명을 주셨지만, 문장으로 알려주시진 않는다. 귀에 속삭여 주시거나, 기적처럼 하늘에 구름으로 적어 주시지 않는다. 주고도 뭔지 알려주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지만, 기회를 열어주신다. 소명을 찾아가며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가라고, 하나씩 하나씩 준비하신 삶으로 보내주신다. 이미 거대한 소명이라는 선물을 주셨고, 살아가면서 그 선물을 잊지 말라고 조그마한 선물을 계속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 선물을 은혜라 부른다. 나는 오늘도 은혜로 소명을 고민한다.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일지 치열하게 고민 중이다. 삶으로 소명을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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