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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무 Oct 14. 2021

단편 시나리오를 썼다.

찍을 수 있을까?

정말 오랜만에 단편 시나리오를 썼다. 마지막으로 단편을 연출한 것이 2017년이다. 4년 동안 단 한편의 시나리오도 쓰지 않았다. 영화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8년에는 AFVAF를 통해 싱글쇼트 작업을 했다. 작가라고 하기도, 작업이라 하기도 민망하지만 큰 프로젝트에 일원으로 참여한 것은 큰 자랑이었다. 영화를 계속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그 후로 싱글쇼트와 예술영화에 관심이 생겼고, 모 감독님의 미술영화 제작부로 일하기도 했다. 미술관에서 개최한 영화 행사에서 사진을 찍거나, 운영을 돕는 등의 일을 하면서 영화 쪽에 발을 걸치고 있어서 내심 기뻤다. 그러면서 다시는 영화 안 할 거라고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자극을 받는다고, 영화 현장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의 영화를 보면서 마음속에선 부러움이 있었다. 나도 계속했으면 현장에 있었을까 싶은 것이다. 물론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현장에 나가려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고, 본격적으로 영화 일을 하려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2017년의 결정이었다. 영화인으로 살기보다 사회적기업가로 살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내 속에 영화가 있었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앉은 적이 몇 번이나 있다. 그러나 완성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이디어만 적힌 파일이 수두룩하다. 싱글쇼트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에 학예사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셨었다. "이제 영화 안 만들어요?" 선생님은 내가 단편 작업을 했던 것을 알고 계셨고, 앞으로 작업에 대해 물으신 거다. 나는 정확하게 이렇게 답했다. "아직 세상에 할 말이 없는 것 같아요." 이 말의 배경에는 할 말 없고, 생각 없는 단편이 너무나 많다는 불만에서 '나는 할 말이 생길 때 영화한다!'라는 마음이었다. 불만 같은 건데,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래도 일단 해보지그래'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선생님이 다시 물으셨다. "할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요?" 나는 나의 아버지를 찍고 싶다고 답했다. 그렇게 굳이 할 말이 없어도 만들 수 있는 싱글쇼트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각자 메시지나 의미를 영상에 담고,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할 말이 생기기도 했다.

잠시 나의 싱글쇼트 작업을 언급하자면, 나는 서울역을 찾았다. 국제적인 프로그램이라 한국적인 곳을 찍고 싶었다. 한국적이라는 말에는 양면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외국인들도 볼 것을 예상했고, 서울역에 가면 노숙자분들이 계시니 서울의 화려함과 노숙자분들을 동시에 담으면 좋겠다 싶었다. 카메라를 들고 서울역으로 갔고, 촬영을 시작했다. 싱글 쇼트의 재미 중 하나는 즉흥성인데, 촬영 중 서울역 계단의 물청소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 재밌었다. 물청소를 시작하자 노숙자분들이 자리를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물청소하는 노동자와 청소차를 관리하는 공무원도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옮겨 촬영을 시작했다. 영상 속에는 노숙자, 물 대포, 관리자가 담겼다. 내게는 꽤나 설레는 장면이었다.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영상을 제출하면서 코멘트를 남겼다. "촬영을 하고 보니, 나는 물이 맞지 않는 곳에서 촬영을 했다.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았던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한국 작품을 정리해 주신 감독님께서는 나의 작품의 해설을 '창작자의 위치'로 풀어 주셨다.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한국의 상징인 서울의 양면성이었는데, 촬영을 하며 발견한 것은 촬영자가 어디에 있느나, 무엇을 보느냐 였다는 것이다. 재미난 과정이고 순간이었다. 싱글쇼트 프로그램을 잘 마치고, 이후로도 종종 작업을 했다. 남모르게 유튜브에 올려둔 싱글 쇼트가 여러 개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고 알게 된 것도 있어서 앞으로도 이어갈 생각이다. 

다시 돌아와서. 오늘 단편 시나리오를 쓴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이 생겼기 때문이 맞다. 여러 가지 상황을 직면했고, 종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빠르게 초안을 쓰고 친구들에게 피드백을 요청했다. 가능하다면, 올해 단편을 하나 찍고 싶다. 가능하다면, 다시 영화로 말하고 싶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맨날 유튜브나 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감사하게도 좋은 교수님 덕에 일주일에 책을 한 권씩 읽고 있다. 조금씩 지경이 넓어지는 기분이다. 아직도 부족하고, 비어있으나 이렇게 채우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영화도 사회적기업도 열심히 해야겠다. 두 길 중 하나로 가는 것이 아니다. 두 길에서 배운 모든 것을 언젠가 사용하게 되는 날이 온다. 초고를 마치니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느끼는 만족감이다. 이 만족감을 기록하고자 나는 또 글을 썼다. 나는 글 쓰며 살아갈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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