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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무 Dec 25. 2021

스타트업 주니어의 고충이랄까.

엉엉. 울고 싶어라.

대표님과 둘이 일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공동창업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엄연한 직급의 차이가 있다. 차이는 역할에서 드러난다. 돈을 움직이거나, 계약서에 서명하거나 하는 경영적인 일은 대표님의 임무. 실무나 실제적으로 몸과 머리를 쓰는 일은 나의 임무. 그래서 공동창업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의 회사 이기도 하다.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생각한다. 하나의 회사를 위해 두 개의 머리가 돌아가는 것이다. 대표님은 내게 결정권도 나누어 주셨다. 때로는 내가 판단하고, 결정할 순간이 온다. 물론 결정 전에 충분한 대화는 필수적이다. 엄연히 나뉜 직급이란 책임의 크기의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회사가 망한다고 가정했을 때 직원에게 오는 피해는 순간의 실직이지만, 대표에게는 인생 커리어 피해가 온다. 내가 내린 잘못된 결정은 회사에 큰 피해를 끼칠 수 있다. 모든 회사에게 동일하지만 작은 회사일수록, 2인 체제에서는 더더욱이. 더더더더욱이.


오늘은 협력사와 작은 마찰이 있었다. 다음 행사에서 지출되는 비용이 자잘하게 있는데, 어느 회사에서 지출할 것인가를 가지고 대립한 것이다. 협력사 팀장님은 나보다 한참 선배님 이시다. 나는 이제 막 사회에 들어온 주니어이고, 팀장님은 시니어 레벨이다. 일반적인 회사였다면, 나는 팀장님과 의견을 나눌 수 없다. 비즈니스 매너 중 상호 간 직급을 맞추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기 때문이다. 대표는 대표와 팀장은 팀장과 대화하는 것. 그래서인지 팀장님은 대표님께 연락하지 않으신다. 매너를 지키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골치 아프다. 대표님 다음으로 연락해야 하는 사람이 나라서, 시니어와 주니어가 직접 소통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부담스럽다.


마찰에서는 회사의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그건 팀장님도 마찬가지. 솔직히 우리 둘의 관계는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회사 대 회사로 판이 바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팀장님과 기분 나쁜 대화를 나눌 일이 전혀 없지만, 회사의 이익과 이해관계 속에서는 자사의 입장을 고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 대화를 나누다 기분이 상했다. 순간 욱하는 마음도 들었고, 이해가 안 되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화낼 일이 아니었다. 어느 회사 던지 비용을 내면 그만이었다.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버짓도 아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내가 낼 수 있는 비용이다. 대화 핑퐁을 15분간 했다. 대화의 진전이 없었고, 나는 조금 지쳤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 지출한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 동안 감정 소모가 정말 컸다. 


나의 결론이다. 나는 오늘 시니어와 씨름했고, 졌다. 내가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나의 결정은 어떻게 보면, 우리 회사의 패배였다. 협력사에서 원하는 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팀장님은 이런 대화를 얼마나 많이 했을까 상상도 안된다. 내가 수학익힘책 풀 때,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계셨을 것이다. 내가 이기기를 바란 것이 오만이었다. 통화를 막 마친 후엔 이렇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지금이나마 정리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렇게나마 풀어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통화를 마치고, 대표님께 결과를 보고 드렸다. 고생했다고 하셨다. 지출하는 비용은 신경 쓰지 말라 하셨다. 사실 알고 있었다. 비용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협력사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느냐, 협조에 따라주느냐가 중요했다.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우리와 함께 해주느냐. 그에 대한 확답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입장이 다른 두 회사가 한 회사의 관점을 맞춰서 일할 때는 갑-을 관계밖에 없다. 협력사는 말 그대로 협력관계이다. 한 회사의 관점에 맞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늘 배운 것 교훈 중 하나. 회사의 돈을 써서 해결되는 문제라면, 개인의 감정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는 것. 내가 씨름을 했지만, 이겨도 득이 없던 경기를 치른 것이다. 상대의 입장은 달랐는지 모른다.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경기, 지면 안 되는 경기였는지도 모른다. 입장이 다를 땐 언제나 간절한 쪽이 승리하고, 강한 자가 승리하는 법이다. 그래서 내가 졌다. 


퇴근하고도 생각이 이어졌다. 통화 내용을 복기하며, 나에게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그리고 팀장님 입장에서 고민했다. 만약 내가 계속 우겨서,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면? 만약 내가 이겨서 우리 회사의 입장대로 진행되었다면? 팀장님은 주니어와 씨름해서 진 시니어가 되는 것인가?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쳤다. 생각이 이어지고, 기분은 여전히 나빴다. 기분 나쁨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단순히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져서 분했던 것이다. 이겨서 득도 없는 싸움에 뛰어들었고,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졌다고 분한 것이다. 내가 주니어라는 증거이다.


팀장님도 지금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계실까? 아니라고 확신한다. 원래 하수가 고민이 많은 법이니까. 나는 오늘 감정이라는 비용을 치름으로 레슨런을 했다. 싸움에서 졌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비용에 대한 대화, 상호 간 입장에 대한 것, 개인과 회사의 분리, 감정의 공과 사 등등. 나중에 시니어가 되었을 때, 주니어를 상대할 일이 찾아온다면 오늘 일이 떠오를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주니어고 내일도 주니어다. 대표님 다음이 나라고, 시니어가 되지 않는다. 시니어는 직급이 아닌 경험으로 올라간다. 천천히 경험을 쌓아 실력 있는, 탁월한 시니어가 되고 싶다. 


오늘 이 경험을 하며, 내가 주니어라는 사실을 마음에 더 깊이 새겼다. 조금 일 해봤다고, 미사일이 발사된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조립 중인 단계이다. 미사일이 발사되기까지 정말 많은 단계가 남아있는데, 일 조금 해봤다고 날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미사일이 발사돼서 폭발하지 않고, 정확하게 목적지로 향하려면 지금이 제일 중요하다. 정확하게 설계하고, 제대로 조립해야 한다. 그게 더 멀리 그리고 강력한 미사일을 만든다. 세상에 모든 주니어 화이팅. 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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