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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무 Sep 05. 2022

나의 것


내게는 분명한 이상향이 있다. 어떻게 살고 싶고, 바라는 마음은 어떻다는 등의 이상향이 존재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와 동시에 나를 어떻게 보느냐, 생각하느냐에 대한 내용도 포함된다. 물론 타인의 시선과 내면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만, 보여지는 모습으로 하여금 느껴지는 것들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재미난 사실은 그 이상향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조금은 무섭게도 느껴지는데, 무서운 것은 아니고 바라는 것이 확실하고 간절하기에 방법이 보일 뿐이다. 그 방법이라 함은 나의 이상향을 이미 살고 있는 사람을 닮아가는 것이다. 아주 똑같이 살아갈 순 없다. 그리고 어설프게 따라 하는 것은 더욱 안 좋은 결과만 가져온다. 그저 아주 조금의 힌트를 얻고, 조심스레 따라가 보는 것이다. 그런데 방식은 다를 것이다. 예를 들기 위해 나의 이상향 중 하나를 공개하자면, 무대 위 혹은 단상 위에서 말을 정말 기가 막히게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보면 정말 극도의 부러움을 느낀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말을 잘할까. 싶은 생각이 따라오고, 심할 때는 질투까지 느낀다. 질투보다는 존경에 가까워서 다행이다. 내게도 많은 경험이 있다. 수 백 명 앞에서 연설도 해보았고, 마이크를 잡고 레크리에이션도 해봤다. 심지어 여러 번. 그리고 15분 토크나 스피치도 여러 번 해봤다. 돌이켜보니 여러 사람 앞에서 말로 생각을 전할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말하는 것이 어렵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린 결론은 '나는 말보다 글로 하는 의사소통에 더욱 강하다는 것'이다. 글 쓸 때는 적어도 생각은 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어떤 이가 말을 잘한다고, 내가 그를 따라 그의 말 방식과 이야기를 가져올 순 없다.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남의 이야기를 가져다가 나의 것인 마냥 떠들 순 있으나, 결국 까발려지면 남는 것이 없을 테다. 결론은 나의 것이다. 나의 것이 있어야 한다.


어린 시절 연예인을 동경했었다. 그들은 뭐가 그리 잘나서 사랑받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보니 연예인도 결국 사람이었다. 그리 잘나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도 그들만의 이상향이 있었고, 그들의 것을 만들어 냄으로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게 연기던 노래던 개그던 어떠한 형태든 연예인은 각자의 것을 만들었고, 세상에 선보이고 있었다. '연예인'이라서 사랑받은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매력적인 집단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바라본 세상에는 자기 것을 가진 사람이 참 많았다. 연예인 집단은 보여지는 빈도가 많았기에 강력했던 것이고, 빈도는 적지만 연예인 만큼이나 매력적인 사람들이 참 많았다. 식당에 가면 그런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은 식당에 가면 주인이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일까 내심 상상하게 되었다. 물론 아닌 식당도 많다만, 우연히라도 그런 곳을 발견하면 괜스레 더 맛나, 더 주문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식당뿐일까. 자기 것을 가진 사람은 어디서든 빛난다.


나의 것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정말 오래 했다. 여기서 나의 것은 글이다. 나는 글로 말하는 것이 좋아서, 글을 남기는 것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정확하게는 글이 써지지 않았다. 글을 쓸 수 있는 건강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미미하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서 더 호흡이 긴 글이나, 오래 생각한 글을 쓰기 어렵다. 그럼에도 오늘날 시도해보았다. 그래야 숨을 쉴 것 같아서.


나는 글로 말하는 사람이다. 글이 너무 좋고, 깊은 고민과 짙은 호흡의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글을 사랑한다.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은 나의 것이다. 나의 생각이고, 삶이기에 그렇다. 이 글이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고, 다음 단계로 인도해 줄 것이라 믿는다. 물론 글쟁이는 자고로 책을 내야 작가로 인정받는다. 과거에 책을 내볼까 생각했다가도, 내가 뭐 잘났다고 책을 쓰냐 싶었는데, 정말 하나도 안 잘난 사람들도 책을 쓰고 살더라. 나라도 지조를 지켜야 하나 싶다, 나라도 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하나 싶다. 그럼에도 책을 쓰고, 갖고 싶다는 욕망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닌 것을 느낀다. 물론 이 과정도 집필이다. 꼭 손에 잡는 책이 나와야 책인가. 이렇게 글을 모아두고, 한 줄이라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면 그게 책이고, 커뮤니케이션이다. 내가 글로 이룩하고 싶은 이상향은 책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기에 이 또한 과정이며 감사의 제목이다.


각자의 방식이 다를 테다. 어떤 이는 말이고, 어떤 이는 음식이고. 어떤 이는 연주 혹은 작곡. 케이터링 일지도 모르고, 가드닝일지도 모른다. 명상일지도 모르고, 걷기 혹은 달리기 일지도 모른다. 내 어찌 타인의 것을 알 수 있을까. 그저 신이 주신 선물이 모두에게 있다고 믿을 뿐이다. 우리네 삶은 그 선물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뜯어 삶에서 누리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선물 보따리를 풀어 나의 것을 만드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주 조금의 도움이 되고자, 열심히 글을 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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